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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사진으로 나의 '페르소나' 발굴하기

(2) 대체 사진 속 저 넙데데한 여인은 누구란 말입니까?

by 박지아
d.jpg ▲ 홍대 프로필 사진관 <스튜디오 피플>에서. 저기 서면 아무 생각도 안 난다.


작가님들은, '개인 프로필 사진'이 있으신지요?


혹은, 찍어보고 싶지 않으신지요?


'프로필 사진'이 뭐냐면, 전문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는 상반신 사진입니다.


증명사진보다 좀 더 자연스럽고 개성 있게 찍을 수 있지요. 흔히 지하철 광고판이나 인터넷 웹사이트 보면, 변호사나 마케터나 강사들이 멋들어지게 찍은 사진 있잖아요. 배경은 깔끔한데, 흰 와이셔츠 입고 환하게 웃고 있는, 그런 사진들. 혹은 책날개에 들어가 있는 분위기 있는 작가 사진 같은 거 말이죠.


저도 이런 사진을 찍고 싶었어요. 별 이유는 없고, 나도 그냥, 한번.


z.jpg ▲ 작가님이 소장한 카메라들. 저 카메라들은 어떤 순간을 필름에 담았을까?


요즘은 평범한 사람들도
스튜디오 프로필 사진을 찍는 시대


저는 32살 즈음에 결혼정보업체에 상담을 받으러 간 적이 있어요.


제가 아무 노력도 없이 모태솔로인 건 아니거든요.


예쁘게 생긴 결혼정보업체 매니저님이 저에게 묻더군요.


"프로필 사진 없으세요? 휴대폰셀카 말고요. 요즘 결혼정보업체 오는 아가씨들은 다 맞선용 프로필 사진을 따로 찍어서 가지고 와요. 하나쯤 찍어 두세요. 필요할 때가 있어요."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대단한 사람이어야 개인 프로필 사진을 찍는 줄로만 알았어요.


그런 게 아니라, 이제 하나쯤 찍어 놓는 시대가 된 거지요.


혹시 쓸 일이 있을지 모르잖아요?


브런치 작가님들도 고려해 보시길 바랍니다. 모르는 법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등단해서 사진이 필요한데 보정어플 쓴 셀카 보낼 순 없잖아요?

일단 김칫국이나 시원하게 마셔보자 싶어서, 촬영을 결정했지요.

z.jpg ▲ 분위기를 달리 해서 찍겠다고 옷도 몇 벌 챙겼다.


헤어와 메이크업까지 받고
카메라 앞에서 허우적거리다


먼저, 헤어-메이크업을 받았습니다. 사진용 메이크업 예약하니 10만 원 정도가 나와요. 전문가 분들이 얼굴에 토닥토닥 두들겨 주고, 머리도 정리해 주시지요. 눈썹도 정리하고, 드라이도 하니, 확실히 다르긴 하더군요. 재미 삼아 한번 해볼 만합니다.


개인 프로필 촬영 전문 스튜디오를 예약했습니다. 스튜디오 홈페이지에 올라온 샘플 사진 보니, 모델의 장점을 자연스럽게 살려서 편안한 사진을 찍으시더라고요.


긴장을 좀 했는데, 걱정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유쾌한 사진작가님께서 참 설명을 잘해주셨습니다. 제 스타일을 딱 확인하시곤, 이런 자세가 좋다고 시범을 착착 보여주시더군요. 전문가답게 참 잘 보여주세요. 그런데 이게, 포즈를 본다고 해서 내가 따라 할 수 있는 건 아니더군요.


허우적거리면서 포즈를 잡다 보니, 이건 뭐 내가 제대로 찍히는지 안 찍히는지 알 수도 없고.


그래도 프로 사진작가님을 믿고 열심히 휘적거렸습니다. 뭐든 건져주시겠지요.


총 50장. 한 번 찍힌 사진 점검하고, 또 50장 찍었습니다. 총 100장 촬영해서 베스트 사진 1컷을 고릅니다.


그런데 이게.


전문 프로필 사진은 정말 다릅니다. 정말 다르더군요. 근데, 이게 참 난감한 게.


저 모니터 속 넙데데한 여자는... 대관절 누구랍니까?


아니, 여태까지 남들이 저런 저를 보고 있었다고요?


객관화가 팍 되면서,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아이고, 하느님.


z.jpg ▲ 사진작가님 아버지의 카메라. 그리고 아버지와 나를 담은 사진.
프로필 사진,
내가 모르는 나를 발견하다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데에는 몇 가지 방법이 있어요.


보통은 도전을 많이 하지요. 안 해보던 운동이든, 취미든, 하다 보면 지금껏 몰랐던 자신의 재능을 발견할 때도 있고, 영 꽝인 부분도 확인할 수 있지요. 그러는 과정에서 "내가 뜻밖에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는 깨달음이 따라옵니다.


상담을 받거나 명상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종교를 믿는 것도, 또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 있더라고요.


인생은 골칫덩어리인 미지의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니까요.


근데, 저는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고 싶어요.


프로필 사진을 찍어 보세요. 신선한 깨달음이 옵니다.


내가 이런 눈빛을 가진 사람이었나?

이렇게 웃는 사람이었나?

남들이 보는 나는 이런 분위기였나?


아, 나에게는 이런 모습도 있었구나!


부끄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zz.jpg ▲ 소품을 사용할 수도 있다. 장미꽃을 들고 싶었는데, 참았다. 나중에 부케나 들고 싶은데.


남들에게 보이길
바라는 모습을 고르는 과정


그런데, 개인 프로필 사진촬영이 모르는 나를 찾는 과정만은 아니에요.


내가 남들에게 보이길 바라는 얼굴을 찾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100장 중에 한 장을 골라야 하는데 어떤 사진을 고르느냐? 이게 또 어렵거든요.


단순히 얼굴이 잘생기게 나온 사진을 고를 수도 있고, 포즈가 좋은 사진을 고를 수도 있지요. 표정이 좋은 사진을 고를 수도 있고, 분위기 있게 찍힌 사진을 고를 수도 있습니다.


다 똑같은 내 얼굴인데, 보다 보면 유독 "나답다" 싶은 사진이 있어요.


혹은 "내가 알던 나보다 더 멋지다" 싶은 사진도 있지요.


그리고 또 "내가 지향하는 모습이다" 싶은 사진도 있습니다.


100장의 서로 다른 내 얼굴 중에 어떤 사진을 골라야 할까요? 저는 제가 지향하는 얼굴을 골랐어요. 내가 되고 싶은 모습. 제가 바라는 얼굴의 사진이, 놀랍게도 찍혀 있더군요.


카메라를 지그시 응시하는 사진이었는데, 눈빛이 좋았어요.


잠잠하기도 하고, 말을 건네는 것 같기도 하고, 호기심이 담겨 있기도 하고, 깊어 보이기도 하는 눈빛. 저런 멋진 눈빛이 나에게서 나왔다는 게 참 신기하더군요.


어렵지 않게 사진을 골랐습니다.


사실은 100장 중 잘 나온 사진이 그것뿐이기도 했고요. 뭐, 어쩌겠어요.

gg.png ▲ 수많은 B컷들. 고르는 것도 일이다.


화룡점정,
사진작가님의 후보정

저는 이날 사진 두 가지 콘셉트로 사진을 찍었어요.


하나는 무겁고 분위기 있는 사진으로.


또 하나는 SNS에 쓸 수 있는 발랄한 사진을 찍었지요. 이건 또 환하게 미소 짓는 얼굴인데, 눈웃음이 참 좋았어요. 실제로도 이렇게 예쁘게 웃었으면 좋겠다, 남들이 이렇게 웃는 나를 봤으면 좋겠다, 그런 욕심으로 사진을 골랐습니다.


서로 다른 느낌의 사진 두 장이 완성되었습니다.


후보정에는 일주일이 걸린답니다.


후보정도 참 재밌어요. 총 다섯 단계가 있더군요.


1. 10% 보정(피부 정도 가벼운 보정)

2. 30% 보정(1에다가 턱선, 목주름, 눈 크기까지 포함되는 보정)

3. 50% 보정(좀 더 예쁘게 하는 보정. '와, 잘 나왔다' 평가를 받을 수 있음)

4. 70% 보정(가까운 사람들이 이 사진을 보고 '이게 누구냐? 사기 치지 마라.'라고 할 수 있는 보정)

5. 사진작가 오마카세(연예인으로 새로 창조)


고민 끝에 30% 보정을 골랐습니다. 저도 양심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더 예쁘게 해 달라는 말은 차마 못 하겠더군요. 나의 얼굴을 지키고 싶기도 했고요.


보정은 일주일 정도가 걸린다고 합니다.


사진작가님 손에서 이 넙데데한 얼굴이 어떻게 변할지 기다려 볼 일입니다.


z.jpg ▲ 이날 신세를 졌던 <스튜디오 피플>의 사장님. 참 유쾌한 분이셨다.


사진 촬영을 마치고


페르소나(persona)라고 하지요.


이른바 '공적 얼굴, 사회적 얼굴'입니다. 실제 성격과는 다르지만,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치는 한 개인의 모습을 의미합니다.


저는 이날 제 페르소나를 보고, 또 직접 고른 것 같아요.


사진관을 나오는데, 홍대입구역의 많은 사람들이 보이더군요. 우리 모두 가면을 뒤집어쓰고, 보이고 싶어 하는 '공적 얼굴'로 보이길 바라면서 사는 거겠지요. 이게 나쁘다고는 할 수 없어요. 어쨌든 내 안에 있는, 내가 좋아하는 내 모습이니까요.


그렇다면, '사적인 얼굴'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것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에 대해 고민하면서, 집으로 돌아왔지요.


브런치 작가님들은 어떠신지 모르겠습니다.


한번 프로필 사진을 찍으면서, 몰랐던 자신의 얼굴을 찾기도 하고, 페르소나를 만들기도 하는 시간을 가져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언제 또 메이크업에 헤어를 받고, 프로 사진가 앞에 서 보겠습니까. 기회는 만들어야 하는 법이지요.


그렇게 또, 내가 몰랐던 나를 발견하는 작은 모험이 끝났습니다.


어쩌면 언젠가 다시 카메라 앞에 서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죠. 좋은 소식이 있어서, 그렇게 될 수도 있고요.


38살 모태솔로가, 흰 드레스 입은 웨딩사진을 찍기는 어려울 것 같지만.


그날이 온다면, 좌우간 그때는 오늘보다 조금 더 여유롭게, 조금 더 나답게 웃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박지아.

편집자. 에세이스트.

caki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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