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동네 글쓰기 모임에서 발견한 반짝임
파주로 이사 온 뒤, 동네 정보를 알아볼 겸 ‘당근마켓’ 앱을 깔았습니다.
중고물품만 파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소모임’ 탭이 눈에 띄더군요. 무심코 눌러본 그곳엔 세상 별별 모임들이 다 있었습니다.
동네 술친구, 맛집 돌아다니는 모임, 뜨개질 같은 취미모임, 매달 책을 한 편씩 읽는 독서모임까지. "파주뱀띠맘" 모임도 있고, "북한산 살방살방 산악회"도 있고, "자영업 사장님 모임"도 있고, "2030 부동산 경제토론모임"이나 "텃밭채소, 꽃밭 나눔 모임"도 있습니다. "노래방 정모" 모임도 있습니다. 매주 모여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는 모임이래요.
사람들이 참 기발해요.
어플을 켜고 어떤 모임이 있는지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밌지요.
글쓰기 모임에 들어가다
저는 글쓰기 모임에 가입했습니다.
파주/일산/고양이면 참여할 수 있는 40대 이상 시니어 글쓰기 모임입니다. 이제 시작하는 모임인지라, 규모는 작지만, 20대 아가씨 모임장님이 주도하는 아주 야무진 모임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 모입니다. 평일반이 있고, 주말반이 있어요.
아직 정해진 프로그램은 없어서, 차근차근 계획하고 있어요.
글쓰기 주제는 모임장님이 매주 제시해 주십니다. 그러면 네이버 카페에 각자 짧은 글을 올리고, 감상을 서로 댓글로 주고받지요.
회원님들이 올린 글을 읽는 것도 재미집니다.
다들 실력이 좋으세요. 글은 처음 써보시는 분도 계시는데, 너무 잘 쓰지 뭡니까. 다들 필력이 어디서 나오시는 건지, 은둔고수이신 건지.
글 하나하나 개성이 담뿍 담겨 있고, 그 안에는 평범한 우리네 모습도, 각기 다른 추억들도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대작가가 아니잖아요. 베스트셀러 작가도 아니고, 책을 몇 권 낸 전문가도 아니고.
다 아장아장 글쓰기 하는 아가들입니다.
서로의 글을 읽으며, 감탄도 하고, 칭찬도 하며, 그렇게 한 줄 한 줄 써 내려가는 거겠지요.
글로 먼저 만나본
얼굴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글로 먼저 알아가는 게 신기합니다.
"니가그리운날" 님은 썰을 풀듯 위트 있는 글을 쓰십니다. 추억도 푸시고, 좋아하는 영화 이야기도 푸시면서 좔좔좔 이야기를 하세요. 이야기 주머니 같아요.
"들꽃과여인" 님은 시적이고 감수성 가득한 글을 쓰십니다. 읽고 있으면 마음에 잔잔한 파동이 일어요. 아련한 듯 애틋한 감성도, 이 분만의 색깔인 것 같습니다.
"다이안"님은 풀밭에 앉아 있는 것 같은 글을 쓰시는 분이세요. 식물 종류를 잘 알고 계시더군요. 옥석 같이 단정하게 다듬어진 문장들 속에서 풀향기가 납니다.
모임장인 "서하"님은, 젊은 사람답게 아주 파격적이고 강렬한 글을 쓰시지요. 원래 시를 쓰셨다고 하는데, 함축적이면서도 이미지가 선명합니다. 시 안에 담긴 콘셉트도 흥미롭지요.
세상에 보석 아닌 글이 어디 있겠어요
보석 아닌 사람이 없잖아요
저는 글쓰기는 기교가 아니라 진정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장은 거칠고, 표현은 단순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 투박한 그 안에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오면서 쌓은 삶의 깨달음이 담겨 있고, 고유한 품성과 개성도 담겨 있어요.
글을 읽으면 사람 얼굴이 보여요.
어떤 글은, 입에 담배를 물고 사색에 잠긴 40대 중년이 보이고, 또 어떤 글은 빛이 쏟아지는 창문 곁에 선 아름다운 여인의 옆모습이 보이고, 또 어떤 글은 빗속을 자박자박 걷는 청초한 여인이 보입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노인의 얼굴도 있고, 인자한 할머니의 얼굴도 있지요.
그래서 제 눈에는 모든 글이 보석 같아요.
보석 아닌 글이 어디 있겠어요.
이 세상에 보석 아닌 사람이 없듯이.
저에게는 글도 그렇습니다.
글쓰기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저는 브런치에 매주 2편 정도의 글을 쓰지요.
익숙해질 법도 한데, 글쓰기는 늘 두려워요. 어떻게 읽힐지, 논리적으로 말이 안 맞지는 않을지, 재미없지는 않을지, 너무 사담은 아닌지 초조하게 걱정하면서 글을 쓰고, 또 올리지요.
그런데 글쓰기 소모임을 다녀오고, 조금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제 글도, 누군가에게 소소한 즐거움이 되어줄지 모를 노릇이니까요.
골목 어딘가에서, 작은 방에서. 같은 하늘 아래, 저마다 하루의 피로를 달래며 한 줄 한 줄 토독토독 키보드를 두드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 생각만으로도 묘하게 위안이 됩니다. 브런치 작가님들도, 그렇겠지요.
글로 만나고, 글로 서로를 알아가는 이 모임이 오래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우리 동네의 글쓰기 모임 이야기를 전했지만, 작가님들의 동네에도 이런 모임이 있을지 몰라요.
혹시라도 일상이 건조하게 느껴질 때면, 당근 어플 한번 켜 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어쩌면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글로 이어지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모르니까요.
그렇게, 오늘도 한 줄.
작은 글 한 편이, 누군가의 하루를 밝혀주길 기대하며 글을 씁니다.
박지아.
편집자. 에세이스트.
caki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