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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히 마주친 May 17. 2024

무인 주문 기계로 주문한 밥은 맛있다.

쪽팔려서 어디에도 못 썼던 이야기

이따금 식당과 술집을 들여다보면 무인 주문 기계가 있는 곳이 열 곳 중에 다섯 곳은 되는 것 같다. 직원은 숙취로 못 나오는 날도 있지만, 기계는 그런 날이 없다. 게다가 인건비도 안 든다는 것이다. 대환영한다. 그 이유는 후술 하겠다. 다만, 환갑 이상은 사용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절반은 되는 것 같다. 얼마 전 영화관에 갔는데  머리가 희끗하고 검버섯이 핀 아저씨가 기계 사용을 도와달라고 했다. 일곱 명의 경로우대 티켓을 '오늘이 아니고' 일주일 뒤 오후 것으로 예매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필자와 같은 영화였다. 시작 시간이 십 분 남아 있어서 당연히 도와주었다. 그 순간, '인터넷 예매를 못해서 직접 사러 온 것 같다.', '기계가 있는 곳이 오히려 불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가락 한마디만 한 금반지를 낀 손에 카드와 영수증을 넘겨주었다.

유럽은 광장문화가 자리 잡고 있고, 혁명이 일어났던 장소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파리 바스티유 광장. 일주일에 두 번 장이 서기도 한다. 제철 과일과 치즈가 진열되어 있었다. 필자를 제외하곤 전부 현지인이어서 모두가 쳐다봤다. (팔아주지도 않으면서 사진만 찍으면 혼날까 봐 못 찍어서 올릴 사진이 없다.) 우리나라는 광장이 드물다. 다만, 안산엔  '성포예술광장'이 있다. 비록 대단한 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자리에 둥글게 카페와 술집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옆에 다농마트가 있다. 들어서면 일 층에는 육십 대 아저씨가 운영하는 안경점, 빨간 꽃무늬 커튼과 천을 파는 가게, 아날로그 벽걸이 시계 전문점이 있었다. 이십 년 전 엄마 손을 잡고 따라가서 슬러쉬 한 잔을 사 마시던 쇼핑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비록 '다이슨 에어랩'이나 '최신형 에어팟' 같은 것은 팔지 않는 것 같지만, 복작거리기보다는 조용히 눈요기하고 싶을 때는 여기가 제격이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삼 층으로 올라가면 청년몰이 있다. 나이가 '몇 살(정확히 몇 살인지 모름)' 이하인 사람들이 장사할 수 있게 정부가 만들어준 곳인 것 같았다. 안산에 두 개밖에 없다. 오해는 하지 말라. '특정 정당을 지지합니다! 경쟁은 무조건 나쁜 겁니다!'라는 구호를 외치려는 게 아니다. 이번 편에서 정치 이야기는 논외다.

주로 삼십 대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장사를 하고 있었다. 마트 푸드코트처럼 어느 음식을 먹든 자유석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한 층을 다 쓰고 있었고, 부스마다 사장이 달랐다. 은은한 보라색 조명으로 벚꽃 핀 밤의 가로등빛 같은 느낌을 냈다. 테이블과 의자는 이트톤이라 깔끔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옆에 정수기가 있었고, 천장 밑에는 스크린도 달려 있었다.

쪽팔려서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이야기인데, 한동안 사람이랑 눈을 마주치고 주문하는 게 너무 싫었다. 지금은 약간 나아진 상태. 예대생 시절의 필자를 알던 사람들은 믿지 못할 거다. 비록 혼자 다니긴 했지만, 남들에게 떡볶이 먹자고 먼저 제안하기도 했고 말 한마디도 안 하고 자리만 지키고 오더라도 술자리에 나갔었다.

거긴 무인 주문 기계가 있었다. 사람 상대를 안 하고 끼니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이곳 음식을 먹었다. 밖에 있는 가게에서는 오징어가 들어간 우동볶음, 순대국밥, 아이스크림이 들어간 와플을 팔았다. 필자가 좋아하지만 청년몰엔 팔지 않는 음식들이었다. 몇 명인지 묻고, 주문을 하고 받고, 계산을 하기까지. 그 삼십 분도 안 걸릴 시간이 두려웠다. 돈을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그랬다. 만약 갔다가는 먹는 내내 마음이 불안할 것 같았다. 두리번거리면서 다른 손님들 눈치 보는 것은 덤이다. 맨날 다이어트한다고 나대고 다니느라 '식사 역시도 기회비용'이라는 말을 달고 사는데도, 그랬다. 스스로의 머리통을 콕 때려주면 사람들이 가자미처럼 눈을 뜨고 볼 것 같아서 참았다. 물론 청년몰 음식이 맛없다는 건 아니다. 그랬다면 진작에 폐업했겠지. 구미가 당기지도 않는 음식을 먹었다는 것이다.

'딩동'하고 내 번호가 스크린에 떴다. 친절한 눈웃음 지은 한 주인이 쟁반을 내밀며 맞이했다. 식전빵은 덤이었다. 하필 흰 옷을 입은 것을 보며 질문했다. "앞치마 빌려드릴까요?" 눈을 피한 채로 고개를 내저었다. 아마 "사람이 말하는데 왜 대답을 안 하고 고개를 저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앞으로도 계속 거기 갈 것 같다. 서서히 "앞치마 빌려주세요"라는 답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잘 먹고 갑니다" 인사할 수 있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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