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붉고 새파란 잡지’ 연재를 시작하며
나는 심약한 사람이라 열두 살까지도 영화관에서 전체 관람가 애니메이션만 보았는데, 이상하게도 스물한 살 여름 즈음엔 타란티노의 필모그래피를 깼다. 연출의 고약함이 화면을 뚫고 나왔지만 개중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게는 저항없이 별 다섯 개를 주었다.
반면 <펄프 픽션>은 사건들이 너무도 격했다. 눈을 반쯤 감고 보다가 결국에는 인터넷에 줄거리를 미리 검색해가며 – 그러면 덜 겁나니까 – 셀프 스포일러를 감행했다. 그러다 ‘펄프 픽션’이 값싼 종이에 인스턴트 단편 소설을 펴내는 잡지를 뜻한다는 배경도 알게 되었다. 타란티노는 자기 영화에 싸구려 잡지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었다. 나는 그것이 어쩐지 마음에 들어서 나중에 유명한 작가나 창작자가 되어 내가 쓰는 짧은 글을 책 한 권에 묶게 된다면 제목에 ‘잡지’를 넣겠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여전하지만 나는 아직 유명한 창작자가 아니다. 나는 젊고 돈이 없고 내 재능에 대한 믿음과 미래에 대한 희망에 기대어 산다. 아마 싸구려 펄프 픽션 잡지에 기고하던 작가들도 그런 상태였을 것이다. 그때의 작가들과 비교해 내가 가진 이점은 시대가 다르다는 거. 나는 아직 유명한 창작자가 아니지만 어쩌면 아직 유명한 창작자가 아니기에 이곳에서 잡지 연재를 할 수 있다.
나의 에세이와 소설과 남의 영화 감상과 내 영화 분석과 시와 기타 모든 것을 뒤죽박죽 내어볼 생각이다. 이는 곧 나라는 사람을 가공 않고 건네는 것이다.당신은 그저 쓱 훑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