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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서 May 17. 2024

책이야기 <해골이 뒹구는 세상에서 시인으로 살아남기>

<꿈꾸는 책들의 도시>와 예술과 나

   이 글은 <꿈꾸는 책들의 도시>의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발터 뫼르스의 <꿈꾸는 책들의 도시>는 내 인생책 중 하나다. 서평도 쓴 적 있지만 이 글은 그저 이 책과 나와 예술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내가 이 소설에 가진 감정은 어떠한 평론 언어로 멋지게 표현하기엔 너무도 단순하고 직선적인 팬심인데, 그 팬심의 기반엔 이 책이 예술에게 보내는 사랑이 있다. 피가 난무하는 이 책은 사실 직설적으로 예술을 예찬한다.

    주인공인 작가 지망생 공룡 ‘힐데군스트’는 소설의 악당 '스마이크'에 의해 지하묘지에 버려진다. 그 지하묘지는 거대한 미로이다. 미로를 둘러싼 악명은 익히 들어왔다. 잔혹한 책 사냥꾼들, 괴물들, 함정들, 우울한 그림자들, 그 모든 걸 지배한다는 그림자 제왕…. 나 같은 겁쟁이 예술가는 그런 곳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나 같은 겁쟁이 예술가만이 그런 곳에서 용기를 발휘할 것이다.

    빌어먹을 예술을 하겠답시고 이 불안정한 길을 걷고 있는 나자신이 원망스러울 때가 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이 책을 읽는다. 예술을 전부 없애는 것이 악당 스마이크의 목표다. 예술은 '지저분하고 무의미한' 환상이며 '퇴폐적이고 쓸데없'기 때문이다. 과연 스마이크는 성공할까? 글만 쓰던 힐데군스트는 싸움 실력도 무기도 없이 문자 그대로 해골이 뒹구는 지하묘지에서 내내 죽음과 마주한다. 그러나 결국 힐데군스트의 삶에 흔적을 남기는 건 그런 지하묘지 속에서도 책을 사랑하는 이들이다. 나의 삶 역시 그렇다.

     스마이크가 밟아 죽이려던 두 예술가 - 힐데군스트와 스포일러 캐릭터 - 는 서로 죽고 죽이는 지하묘지 밑바닥에서조차 기어코 예술가이길 자청한다. 나는 힐데군스트가 끝내 시인의 모습으로 참혹한 지하묘지를 빠져나왔다는 것이 좋다. 당장 어린이 모험 영화 세계관 속에 떨어져도 1번 낙오자가 될 것 같은 내가 어린이 모험 영화는 커녕 목을 자르네 어쩌네 소리가 오가는 저 끔찍한 지하묘지에 떨어지면 당당하게 살아나올 수 있을 거라는 말도 안되는 용기를 품는다.

    이현서는 비유적으로 해골이 뒹구는 세상에서 시인으로 살아남고자 한다. 나는 지하묘지에서 철퇴를 휘두를 능력은 없지만 그 철퇴에 깃펜과 카메라로 맞설 객기는 있다. 그런 객기가 내게 어떤 결과를 안길지 몰라도 나는 계속해서 전진한다. 언제 공격당할지 모르는 캄캄한 지하묘지에서, 내 여린 약점을 모두 드러내고.

    나와 약점을 공유하는 어린 아이들은 내가 남긴 흔적을 따라 지하묘지를 거스를 것이다.

    예술은 내게 길잡이를 가능케 한다. 빌어먹을 예술을 사랑할 이유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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