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하파 Nov 25. 2024

엽편소설: 인터뷰

인터뷰



20여 년 가까이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여배우 정영원은  최근 개봉을 앞둔 영화 홍보 활동의 일환으로 영화잡지 기자와의 인터뷰를 시작했다.  매번 뻔한 질문들과 비슷한 답변들을 주고받는 여러 홍보 행사에 좀 지쳐가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오늘  인터뷰 응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우선 정영원 배우가  최근에 출연하신 영화 ‘이터널(Eternal)’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데, 간단히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네, 물론이죠. 이 영화는 영생을 꿈꾸는 과학자와 그의 아내가 주인공이에요. 그는 아내에게 젊음을 영원히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실험을 해서 성공하게 돼요. 그런데 그 실험이 자신에게 적용되면서 부작용이 발생하게 되죠. 그는 오히려  점점 더 빨리 노화가 진행되면서  영원한 젊음을 유지하는 아내와의 관계에서  오해와 질투와 갈등을 느끼게 되고, 결국 그 질투는 비극적인 결말로 이어집니다.   

-네 굉장히 흥미로운 이야기인데요.  물론 그 아내 역할이시겠죠.

-네. 아시다시피 제가 워낙 방부제 미모라고들 하셔서.     


영원은 다소 자조적인 웃음을 웃었다.  기자가 이어 질문을 한다.


 -이 영화의 캐스팅을 제안받았을 때 어떤 점에 끌리셨나요.

- 사실 이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은 아내를 너무 사랑하고 그래서 서로의 영생을 꿈꾸는데  불행하게도  한쪽은 불사의 삶을 얻는 대신 한쪽은 더 죽음에 빨리 이르게 되잖아요.   그러면서  아내의 젊음을 질투하면서, 그 영원하다 생각한 사랑이  질투와 오해 증오로 바뀌어 가는 거죠.  이런 아이러니가 저한테는 흥미롭게 다가왔어요.  저는 이 영화가  남녀 간의 영원한 사랑이라는  관념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자신이 '영생'을 얻으려는 욕망 때문에 결국 자기 자신을 파괴하게 되죠. 또한  완벽한 사랑을 유지하려다 그 사랑을  폭력으로 바꾸게 되는 거잖아요.  또한 단순히 남녀의 사랑과 복수극이라기보다 죽음과 삶에 대한 진지한 물음들이 있는  우화라고 생각했어요.  

-그렇다면, 정영원 배우님은 개인적으로  '영생'이나 '불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실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우리 모두 한 번쯤은 '시간을 멈추고 싶다'거나 '영원히 젊고 싶다'는 생각을 하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영원히 젊음을 유지하는 것이 정말 '행복'으로 이어질까요? 저는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오히려 시간이 흐르지 않으면 우리는 무엇을 의미 있게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들어요. 시간의 흐름과 노화, 죽음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한계적 요소들이죠. 만약 시간이 멈추고, 죽음도 없다면, 과연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살고 있다'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제 생각에 영원, 영생, 불사에 대한 욕망은 자연스럽고 인간적이지만  그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 시간의 흐름 속에 변화해 가는 우리의 모습이 의미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그렇네요. 멋진 말입니다,  결국 시간의 흐름이 우리가 '살고 있다'는 증거라고도 할 수 있겠죠. 그렇다면, 죽음이 중요한 삶의 일부라고 보는 건가요? 죽음이 없다면, 우리가 현재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를 수도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  그렇죠. 죽음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어떤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야 할지에 대해 중요한 암시를  주는 것 같아요. 만약 우리가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시간이 무의미하게 될 수도 있죠. 하지만 죽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순간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삶의 깊이를 찾게 되는 것 같아요. 그 점에서, 저는 '영생'을 꿈꾸는 것보다는, 그 시간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에 더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건 좀 외람된 이야기 같지만 많은 분들이 말씀하듯이 영원 씨가 정말 세월을 거슬러 젊음을 그대로 유지하는 배우로 유명하시잖아요 ,  일각에서는  ‘정영원 뱀파이어 설'까지 나도는 정도인데요.  하하 ,  제가 오늘 직접 뵈니 그 말씀을 정말 실감하게 돼요. 제가 데뷔 때 한번  그리고 한 10년 전쯤 한번 그리고 오늘이 세 번째 뵙는 건데. 정말 하나도 변하신 게 없어요. 제가 영화 속 과학자가 된 거 같거든요.  이런 질문하기 정말 싫은데 특별한 관리 비결이라도?

-뱀파이어니까.. 아무래도 피를 먹어서?    농담이고요.  저는 외면뿐 아니라 내면의 나이라는 것도 있지 않나요  저는 제 내면이 젊다는 걸 확신하거든요 그래서 그게 외면에도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닐까.  젊게 살려고 하면 실제로 외면도 젋어지는 것 같아요

-저도 제가 사춘기에 머물러 있다 생각하고 사는데 주름은 오춘기에 접어드는 것 같은데.. 하하. 네  다시 영화이야기 할까요.   이 배역을 연기하면서  이런 점을 좀 부각하고 싶었다 하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음  이 여자는 상당히 복합적인 인물이라 생각했어요.  처음에 그녀는 자신이 남편인 과학자에 대해 변하지 않는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평면적인 인물이었지요.  하지만 자신이 더 이상 늙지 않는  젊음을 소유하게 되고 남편은 점점 더 빨리 늙어가면서 자기 안에 숨어 있던 여러 가지 페르소나가  출현하기 시작해요.  여전히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도 있고    점점 집착적으로 변해가는 남편을 바라보며 동정과 연민에서  가학적인 얼굴이 나오기도 하고.   자신의  영원한 아름다움을  타인에게 과시하고 싶은 욕망도 생겨나고  한편으로는 그것이 사라질까  불안해하기도 했다가  또  변질되지 않는 젊음에 대해 지루함을 느끼기도 하지요.    저는 이 다양한 측면들이 충돌하지만 그게 그냥 다중인격자처럼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이 다양한 벡터들이  원심력으로 작용하면서도  지고지순한 사랑의 힘을 믿었던 원래의  구심점으로 다시  융합해 가는 모습으로 비치게 하고 싶었죠.   더 이상 이야기 하면 스포일러가 될 것 같은데 사실 이 둘은 서로를 파멸에 이르게 하는 것 같지만  이 영화의 결말이 좀 더 포괄적인 의미의  사랑으로 회귀하는 모습처럼 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네 알겠습니다.  저도 영화를 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했는데, 역시 그런 의도를 가지고 연기를 하셨군요.

-사실 어떤 목표에 두고 인물을 만들어 간 것은 아니에요.  연기를 하면서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 캐릭터가 가는 방향이 생기죠.  감독님도 그래서 시나리오를 많이 수정하셨고요.   저는 정해진 시나리오에  따라 연기하기보다  연기를 하면서 차츰 그 인물이 생성되어 가는 과정을 음미하면서 반영해 보려고 애를 쓰는 편이에요

-그렇죠 , 사실 영화라는 게 시나리오가 중요하기도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아무리 좋은 시나리오라도 배우가 그것을 살리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고 보는데  그런 측면에서  정영원 씨가 정말 큰 역할을 해주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떠세요? 감독님 반응은?

-뭐  좋아해 주시죠.  사실 많은 부분 저를 생각하시면서 시나리오를 쓰셨다고 해서 그런지 많은 부분 연기하는데 수월한 부분이 있긴 했어요.  

-사실 기획하고 시나리오 쓰고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시간이 꽤 오래 걸리잖아요  그런데  캐스팅이 확정된 것도 아닌 상태에서  특정 배우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쓴다는 게  어떻게 보면 위험의 요소도 있을 텐데.  물론 캐스팅이 되고 안 되고를  떠나 영화화되는 시간까지 그 배우의 이미지가 변할 수도 있는 거고.  근데 아마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10년 전에 어떤 특정 나이 역할을  지금 한다 해도 별로 차이가 없는  영원 배우님만의 그 변하지 않는  젊음의 느낌 때문에  감독님도 그렇게 하지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칭찬으로 생각해야 하나요. 어찌 보면 10년 동안 변화가 없는 배우라는 말처럼 들리는데,  호호.

-어휴, 당연히 배우로서의 이미지는 팔색조이시죠.  그냥  젊음의 기운이 늘 충만한 팔색조랄까?

정영원은 자꾸 그녀의 외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조금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기자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당신도 어쩔 수 없나?  무엇보다 말할 때마다 기자의 목덜미에 솟아나는 핏대가 눈에 거슬렸다.   영원은 남은 인터뷰를 형식적으로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의 집은 서울 외곽의  다소 외진 마을에 있는  저택이었다.  그녀는 철저하게 사생활을 보호받고 싶었기 때문에 매니저도 항상  집 앞까지만  그녀를 태워다 주고 절대 집안으로 들어오는 일이 없었다. 200여 평 남짓한 정원에는  통로를 제외하고 나무와  커다란 화초들이   촘촘히 심어져  있어 2층 건물의 1층은 외부에서 보면 잘 드러나지 않았다.   현관을 열고 들어오자 거실에 있던  커다란 울프독이  그녀를  반기며  다가왔다.   그녀는  외투와 핸드백  그리고  밴드 스타킹을  차례로 벗으며  부엌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울프독은 그녀가 벗어던진 것 들을 입에 물어 소파에 하나씩 가져다 두었다.   영원은 커다란 냉장고 앞에 다가가 문을 열었다.  냉장고 가득 붉은색의 액체가 비닐 팩에 담겨 줄을 맞추어 정렬되어 있다.  그중 하나를 손에 짚히는 대로 꺼내어 들어  입구를 찢어 내고는  오랫동안 참아왔던 갈증을 풀어내듯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는 아직 갈증이 가시지 않은 듯 다시 하나를 더 꺼내어  좀 전 보다 더 허겁지겁 입안에 쏟아 넣고 삼켰다.  그 바람에 붉은 액체가 입가를 타고 흘러내렸다.  잠시 고개를 뒤로 젖히고 숨을 깊게 들이 마신  영원은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리곤 무릎을 감싸 안으며  소파에 앉은  울프독을 바라보았다.

- 아저씨, 거기 그렇게 있지 말고 이리로 와.  

울프독은 어슬렁거리며 원영에게로 다가와 그녀의 손을 핥았다.

-  왜 다들 내가 변하지 않길 바라는 걸까 … 정확히 15년 째네, 오늘로.  아저씨는  기분이 어때?  

울프독은  여전히 그녀의 손을  부드러운 혀로 핥을 뿐이었다.    

-그때 그 일… 후회하지 않아?   


울프독은  그르렁대면서  짧게 두세 번 짖어댔다.

-오늘이 며칠이지.  아까 오면서 보니까  달이 많이 차올랐던데.. 이번엔 얼마나 더 늙어 있을까.  우리 아저씨.

영원은 울프독의 목덜미에 얼굴을 품고 꼭 껴안았다.

-말 좀 해봐.  가만있지 말고.  참, 정말 못 알아듣는 거야?  어때? 그 안에 있을 때는 어떤 느낌이야.  늑대가 된 기분은 어떤 거야.   그래도 당신은 시간을 느끼고 있지.  시간이 가고 있다는 걸.  늑대는 수명이 얼마나 되지?  왜 보름달이 뜨면 한 달 밖에 안 되는 시간인데 당신은 1년씩 지나간 것처럼  늙어 있는 거지?

늑대의 시간으로 살고 있어 그런 거야?

영원은 울프독을 안았던 팔을 풀고 눈을 마주쳤다. 울프독은  그 눈길을 피하곤 다시 소파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땐 그냥 내 젊음이 영원하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어.  그래도 아저씨가 그런 계약을 할 줄은 정말 몰랐어.  왜 그랬어?   아니 , 아니 , 그놈이 내 목덜미를 물었을 때  난  사실… 좋았어. 이렇게 영원히 늙지 않고 영원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걸.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면서  여배우로서 오래오래 정상에 있고 싶었어.  사실 아저씨가 그 조건으로 이렇게 될 거라는 걸 알았다 해도 나는 모르는 척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을 거야.  미안해, 미안해.  아저씨가 내가 한 말을 그렇게  실행에 옮길 줄은 몰랐어.  근데 웃긴 게 뭔 줄 알아. 이젠 나이 들어 보이는 화장을 해야 해. 혹시라도 정말 사람들이 내가 뱀파이어가 된 걸 알아차릴까 봐.  정말 웃기지 않아?  그 영화 제안이 왔을 때 정말 뜨끔 했다니까.   그 감독 놈  어떻게 알았는지  영화는 무슨,  다 개뿔  관심도 없었어. 애초에 그놈은 내가 자기를 물어주길  바랐던 거야.  어디 듣보잡 영화제 가서 이상한 상 한 번  타더니 지가 대단한 예술가인 줄 알아.  그렇게 영원히  자기랑  예술해 보자고  그렇더라고.  멍청한 놈.  내가 뭐라 했는 줄 알아.  언론이든 어디든 까보려면 까보라고.   사람들이  네 말을 잘도 믿어 주겠다고. 영화 홍보하려고  이상한 노이즈 마케팅이나 하는 3류 감독이라고 오히려  널 매장시킬 거라고, 나름 내 이야기 같아서 연기 제대로 해준 건니까  이거 살려서 성공하기나 기도하라고.   역으로 윽박 좀 질러 줬지.  흥, 그 새끼 표정 아저씨가 한 번  봤어야 하는 건데.   아저씨 …  이번 보름엔  아저씨가 아저씨로 돌아오면… 내가 아저씨 목을…. 물어줄까?  그러면  아저씨도 더 이상 늙지 않고 나와 함께  영원히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좀 전부터  울프독인지 아저씨인지는  거실 창으로 살짝 들어오는  달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은 듯 짐짓 고개를 돌려 집 밖을 응시할 뿐이었다.  마치 빨리 달이 차오라서  사람으로 되돌아가길 간절히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