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성불오름
성읍에서 제주시내 방향으로 번영로를 지나다 보면 영주산과 산굼부리 중간지점에 모양이 멋진 오름이 있다. 성불오름이다. 스님이 불공을 드리는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성불오름이라고 불린다.
성불오름은 입구를 찾기가 다소 어렵다. 안내표시가 억새풀에 가려있고, 산책로도 말목장 사이에 자그마한 오솔길이다. 게다가 풀이 자라 사람들이 다닌 흔적을 찾기도 힘들다. 트랙터가 다닐 정도로 넓은 목장 내부 길이 조성되어 있는데 평상시에는 철문으로 닫혀있다.
입구를 한 번에 찾았다면 행운이다. 목장 사잇길을 지나면 멋진 둘레길 풍경이 펼쳐진다. 왼쪽에는 드넓은 초지에서 말들이 풀을 뜯는다. 무리를 지어 달리기도 한다. 말안장을 두르지 않고 경쾌하게 달리는 말들의 모습이 보기 좋다. 그 누구의 간섭이나 통제를 받지 않고 자유를 만끽하는 것 같다.
좀 더 걸으면 멋진 삼나무 산책길이 나온다. 길 양옆으로 커다란 삼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을 제주도 거센 바람으로부터 보호하려는 듯, 아니면 스님을 닮은 오름을 만나러 가기 전 경건한 마음을 가져라는듯 일직선으로 늘어서 있다. 제주도 오름에는 삼나무가 유독 많다. 예전에는 오름에서 자라는 풀과 나무를 베어 땔감으로 사용한 탓에 민둥오름이 많았단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제주도에 홍수가 발생하고 흙이 무너져 내려 다치는 사람도 생겨나자 1970~1980년대에 삼나무를 많이 심었단다. 그 후 50여 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 울창한 숲을 형성하여 사람들을 편하게 해 준다.
삼나무는 다른 나무에 비해 빨리 성장하는 장점이 있지만, 숲을 이루고 난 이후에는 그 나무 밑에 다른 나무나 식물들이 자라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단다. 숲이 깔끔하게 정돈된 느낌을 주지만, 병충해 등에 약하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오름입구에서 오름 하단까지는 1~2km 정도 된다. 산책로에는 파란색 산수국이 듬성듬성 피어있다. 한라산이나 오름에서 자생하고 있는 덩굴나무의 빨간 열매도 눈에 띈다.
오름 정상에는 나무의자 두 개가 놓여있다. 이곳에서는 앉아서 주변풍경을 감상한다. 백약이오름, 좌보미오름, 동검은이오름, 높은오름, 영주산 등 제주도 동부 중산간지대 유명오름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온다. 어렵게 올라온 보람이 있다.
이제는 능선을 따라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사람이 많이 찾지 않는 오름이라 산책로 주변에는 풀이 크게 자라 있다. 목장 안에 있는 말 우리가 나온다. 드넓은 목장에서 뛰어놀던 말들이 들어와 있다. 따가운 햇빛을 피하기 위해서 스스로 들어온 것 같다. 주변에 이를 관리하는 사람이 없으니 말이다. 넓은 목장 안에 나무 한그루가 우뚝 솟아있다. 목가적인 풍경을 만들어 낸다.
오름 둘레길이 끝나는 지점에 억새가 군집을 이루고 있다. 하늘하늘 흩날리는 억새밭이다. 이곳 억새들은 유난히도 키가 크다. 내 머리 위에 있으니 175~180cm 이상 되는 듯하다. 360도를 빙 둘러 머리 위에서 바람에 휘날리는 억새풍경이 멋지다. 바람소리도 경쾌하게 들린다. 억새만이 보이는 곳에 같쳐있어도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