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어승생오름
어승생오름은 높이(비고)가 350m로 제주도 368개 오름 중에서 영실 코스에 있는 오백나한(389m)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오름이다. 오백나한은 영실코스를 오르면서 관람은 가능하지만, 오를 수는 없다. 그래서 사실상 일반인이 오를 수 있는 오름 중에서는 어승생악이 가장 높다고 보아야 한다.
어승생악은 작은 한라산이라고 부른다. 모양도 닮았고, 정상에 분화구가 있으며, 그 안에는 백록담처럼 물이 고여있다. 비가 많이 내린 날에는 분화구 내에 물이 차 있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평상시에는 주변에 풀이 많이 자라고 있어 습지 형태로 보인다.
어승생악은 높다란 한라산 정상을 오르지 않으면서도 웅장한 백록담 형체를 가까이에서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게다가 겨울철에는 작은 한라산의 아름다운 눈꽃을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어승생악은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어승생악 정상에는 군사시설 토치카가 아직도 남아 있다. 이곳은 산으로 둘러싸여 연합군이 접근하거나 위치를 발견하기 어렵지만, 일제는 제주바다를 통해 들어오는 배, 항공기 등을 한눈에 볼 수 있었던 장소이다. 벙커는 견고한 시멘트로 지어졌으며, 현재도 내부에 5~6명이 서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참호를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곳 군사시설을 건설하는데 많이 제주도민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시멘트를 짊어지고, 무거운 포와 포탄을 들고서 이렇게 높은 곳까지 올라오면서 많은 사람이 다치기도 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