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노트2-⑤] 파주 보광사와 목어
드라마 「동이」는 조선시대 숙빈 최씨(1670~1718)를 다룬 이야기다.
2010년 3월부터 10월까지 방영된 60부작으로 평균 시청률이 25.4%(AGB,수도권 기준)라고 하니 성공한 드라마다. 신분이 낮은 ‘침방나인’에서 정1품 빈(嬪)에 오른 성공스토리가 흥행의 주요 요인이다.
궁중 암투의 대명사격인 숙종과 인현왕후, 장희빈의 삼각 구도에서 숙빈 최씨의 역할은 작지 않았다.
또 조선 후기 전성시대를 연 21대 임금 영조대왕(1694~1776, 재위:1724~1776)을 낳아 훌륭하게 키운 공도 인정받는다.
파주 보광사에는 숙빈 최씨의 위패를 모신 어실각(御室閣)이 있다.
영조대왕이 어머니 숙빈 최씨의 극락왕생을 위해 보광사에 그 임무를 맡긴 것이다. 어실각 앞에는 영조가 심었다는 300년 된 향나무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영조의 친필이 내걸린 대웅보전.
여러 종류의 그림으로 삶에 지친 백성들을 위로하고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미술 전시관 같다.
대웅보전 천장을 찬찬히 살펴보면 하늘에서 구름을 탄 선녀가 춤을 추고 내려오고, 피리를 불고 악기를 두드리는 동자의 모습도 찾아 볼 수 있다.
주악비천도(奏樂飛天圖), 천동타고도(天童打鼓圖)라는 이름이 붙는다고 한다. 옥황상제가 즐길 법한 천상의 음악소리를 시각적인 효과로 전환시켜 백성들을 위로하는 듯하다.
이런 저런 인물도 등장한다. 도교에서 말하는 여덟 명의 신선(八仙)도 찾아볼 수 있다. 하마선인(蝦蟆仙人)이라는 신선이 세 발 달린 금 두꺼비와 장난하는 그림이 눈에 띈다.
매우 희귀한 세 발 두꺼비는 큰 행운이나 재물을 가져다준다고 해, 중국인들은 정초에 이 그림을 집안이나 가게에 걸어 둔다고 한다. 현실의 소망을 담은 일종의 길상화(吉祥畵)다.
그림 곳곳에 잉어나 게, 새우 같은 바다 생물이 등장하는데 이것 또한 삶에 지친 중생들에게 던지는 희망 메시지란다.
“등에 딱딱한 껍질이 있는 게를 ‘갑각(甲殼)’이라 하여 최상, 일등을 뜻하는 ‘갑(甲)’자와 같기 때문에 장원급제를, 큰 잉어를 탄 것은 등용문으로 출세를, 새우는 등이 휘고 수염이 길어 ‘해로(海老)’를 ‘해로(偕老)’로 여겨 부부지간 백년해로를 표현했다. 이것을 하나로 담아낸 그림은 물고기, 게와 새우는 자식 번창하고, 장원 급제하여 부부지간 행복한 삶이 이어지도록 부처님 전에 발원했다.”<불교신문,2022.6.15.>
대웅보전 내부 불상 뒤 벽면에 있어 찾기가 쉽지 않지만, 해초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주황색 옷의 달마대사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다.
헝클어진 머리에 덥수룩한 수염, 치켜든 눈썹에 부리부리한 눈, 거기에 꽉 다문 입술은 ‘내 비록 거친 풍파를 맞닥뜨렸지만 부처님의 진리를 중생들에게 반드시 전하고 말겠다’는 의지(?)가 느껴지기도 한다.
대웅보전 외벽도 중요한 그림판이다.
흙이 아니라 나무로 된 판벽인데, 삼면에 그린 그림도 볼 만하다.
사자를 탄 문수동자나 코끼리를 탄 보현 동자의 모습도 재미있게 표현돼 있고, 흰옷 입은 관음보살과 우락부락 생긴 금강역사의 표현도 실감난다.
연꽃을 타고 극락세계에 다시 태어나는 모습을 그린 연화화생도는 다른 절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그림이라고 한다.
꽃비처럼 내리는 연꽃은 불교에서는 환생 혹은 재생을 상징한다고 한다. 거기에 타고 있는 인물도 볼살이 통통한 아기처럼 보이는데 요즘의 캐릭터처럼 친숙하다.
미술관 관람을 마친 기분으로 대웅보전을 내려오다 보면 만세루 툇마루에 홀로 걸린 목어가 다가온다.
세월을 느끼게 하는 보광사 목어, 길이가 290cm 가량 되고 몸통 두께는 70cm라고 한다.
머리는 뿔이 난 용이고 입에는 여의주를 물었는데, 몸통과 꼬리는 영락없는 물고기의 모습이다.
아래쪽 배를 갈라 텅 비어 있지만, 그 곳을 채우는 충만한 소리로 불법의 묘음을 중생들에게 들려준다.
「木魚(목어)를 두드리다
조름에 겨워
고오운 상좌아이도
잠이 들었다.
부처님은 말이 없이
웃으시는데
西域萬里(서역만리)ㅅ 길
눈부신 노을아래
모란이 진다.」 <조지훈,「고사(古寺)1」,1941>
///TOK///
*주) 시인 조지훈 선생의 시 「고사(古寺)1」은 시인이 오대산 월정사에 머무르면서 “깊은 산중 단청이 낡은 옛 절에 봄도 무르익어 첫여름으로 들어설 무렵 무척 고요한 대낮에서 저녁 어스름으로 넘어갈 때...목탁 소리마저 그치고 산속은 그만 적적한 데 극락정토가 있다는 서녘으로 놀이 물들어 온다"<조지훈,『시의 원리』,나남,1996,p.102>는 풍경을 묘사한 것으로 파주 보광사와는 직접 인연은 없지만 목어를 보고 떠올라 인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