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2000자)
식사 후, 가족들은 각자 방으로 흩어졌다.
아빠는 운전으로 피곤해 잠을 자고,
엄마는 아프신 할머니를 대신해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동생들은 학업 스트레스를 핑계로
안방에서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나 역시 특별히 할 일은 없었다.
그렇게 소리 없이 흘러가는 명절의 밤.
마루에 누운 할머니와 나.
단둘이 남게 되었다.
그러나, 평소 말수가 적은 할머니였기에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서로의 기척만 느낄 뿐이었다.
어색했다.
애초에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 불편한 감정의 원인은 뭘까 생각해 보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나와 할머니는 그리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으니까.
겉으로는 웃으며 안부를 묻고 예의를 갖췄지만,
서로의 속마음을 터놓은 적은 없었다.
언제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 온 관계였을 뿐.
괜히 속을 털어놓으면 민감한 사정으로 할머니를 더 염려하게 만들까 봐 싫었고,
나 역시 그렇다고 '어른들의 사정'을 함부로 캐묻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러웠다.
그래서일까.
침묵이 길어질수록 나는 무의식적으로 발을 떨며 핸드폰만 바라보게 되었다.
불편함을 표현하는 방법이 그것밖에 없었다.
굳이 말을 걸어야 할까.
아니면.
조용히 방으로 들어갈까.
대화를 나누기엔 지나치게 적막했고, 명절이라기엔 집은 너무 허전했다.
누군가 먼저 헛기침을 하며 조용히 입을 떼주길 바랄 뿐, 나는 끝내 방법을 찾지 못했다.
속으로 탄식하며 안방으로 발길을 돌렸다.
단순히 이건
3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정도로 생각하면서.
그러던 중.
문 앞에서 발이 멈춰 섰다.
‘정말 들어가도 괜찮을까…?’
불현듯,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가 지금 할머니라면… 외롭지 않을까?’
그 생각이 스치자, 나는 멍하니 고개를 돌렸다.
마루에 누운 할머니의 뒷모습이 보였다.
도로 한복판에 널브러진 길고양이처럼 생기 없는 모습이었다.
숨만 쉬고 있을 뿐, 너무나 초라해 보였다.
'괜한 잡생각이겠지.'
애써 그렇게 치부하며 이미 문손잡이를 돌린 순간,
무의식적으로 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이번 설날은 우리만 내려가니까, 할머니 외롭지 않게 잘 좀 챙겨야 한다.'
나는 손잡이를 잡은 채 멍하니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짧은 순간, 여러 생각들이 질서 없이 머릿속을 스쳤다.
‘만수무강을 기원합니다.’
식사 중, 우연히 본 사진 속 배너의 글귀.
그리고 약봉지를 쥔 할머니의 말이 다시 머릿속을 스쳤다.
‘내가 죽어야지.’
나는 문득, 예전의 내가 떠올랐다.
아니, 최근의 나까지도.
길을 걷다 구걸하는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그 자리에서 몇 푼 되지도 않는 구겨진 지폐 한 장이라도 건넨 적이 있었다.
더 과거로 거슬러 가면, 중학생 때도 그랬다.
산책 중, 운동장 구석 벤치에 홀로 앉아 계신 어르신을 보면, 조용히 그 옆에 앉아 말을 걸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서로 속마음을 털어놓았고, 마지막엔 늘,
작은 웃음으로 대화가 마무리되곤 했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소외당하는 친구가 있으면,
교회에서 배운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말을 떠올리며
그들의 곁을 지켜주었다.
가끔은 교회에서 전도용으로 나눠주던 삼각김밥을 챙겨주거나,
내 용돈으로 간식을 사주기도 했다.
다른 친구들이 못마땅한 시선으로 쳐다봐도,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럴 때마다 내게 붙은 별명은 늘 같았다.
"쓸데없는 오지랖."
그때, 그것이 동정인지, 가책인지,
아니면 그냥 심심해서 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내가 멈춰 선 이유가 어설픈 감정 때문이라 해도 상관없다.
삶의 모든 행동에 합리적인 이유가 필요한 것은 아니니까.
단지, 나는 할머니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그 사실에서 비롯된 호기심.
그리고, 할머니를 위로해 주고 싶은 작은 동정심.
이런 사소한 선택들이 결국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가는 게 아닐까.
무엇보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는 먼저 다가가 말을 걸면서도,
정작 할아버지에게는 용기가 없어 몇 마디조차 나누지 못한 채 떠나보냈다.
그 기억이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었다.
“쓸데없는 오지랖.”
하지만, 그것이 내 삶의 의미를 만들어주는 순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