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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추억 Jan 01. 2025

젓갈

장날, 젓갈 집 앞에서 이쑤시개로 젓갈을 시식했지.
짜다, 당연히 짜지.
사장님께 하얀 쌀밥도 같이 팔아 달라고 하니 자기가 싸 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같이 먹자 하신다.
내 아무리 양심이 없기로서니 장사꾼의 한 끼 식사에 손을 댈까. 허나 좀 친해지면 정말 손을 댈지도 모를 일이지.
귀여운 통에 든 낙지 젓갈을 만오천 원 주고 샀다. 가장 못 보겠는 젓갈은 새우젓. 아무런 양념 없이 절여진 새우젓이 언뜻 보면 내 피부 빛 마냥 그래 보인다. 몇 마리인지 세어볼 엄두가 안 나는 것도 새우젓.
젓갈이랑 나랑 다른 건 태생이지. 젓갈은 원래 바다에서 났고 나는 땅에서 났나? 하늘에서 났나? 엄마 뱃속에서 났구나. 암튼 젓갈과 태생이 다르지. 같은 건 둘 다 절여지고 있다는 것. 젓갈은 소금에, 나는 소금 같은 것에 절여지고 있지. 이따금씩 부패하고 싶어. 썩어지고 싶다. 그냥 유기물이 되어 순수하게 자연 속에서 쉬고 싶은 거지.
저릿저릿한 몸통으로 살아가는 내가 젓갈통에 빠진 젓갈인 게지. 어쩐지 눈물이 짜다 했고 식은땀도 식으면 찝찝해. 바닷가에 한참 서서 바람을 맞은 마냥 소금기가 피부에 들러붙더라니.
젓갈마냥 사는 사람도 있지.
시뻘건 고춧가루,
깨부숴진 알싸한 마늘에 아려지고
매운 청양 고추까지 함께 버무려졌네.
깨소금은 신의 은총인가.
소금에만 절여져 있는 새우젓을 보다가
양념까지 된 다른 젓갈들을 보니까
젓갈들이 버무려질 때 그만해!라고 외쳤을 것만 같은 거지.
젓갈 먹기 참 그렇네.
맵고 짜고... 그나마 쓰지 않으려 몸부림친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네.
더는 감각 없을 것 같은 염장식품이 여전히 살아남은 감각이 있을 줄 누가 알까.
지지리 슬픈 어린 새우와 어린 꼴뚜기, 그치만 어부들에게는 재수가 좋았지.
더 빨리 내 몸이 늙어져 가면 좋으련만. 젓갈 앞에서 나는 한없이 부패하고 싶다. 영원히 살지 않아서 감사해. 늙어지지 않는 것은 젓갈의 저주야.
젓갈은 밥도둑이고
저릿저릿한 몸을 가진 사람은 사람을 맛깔나게 하는 시를 쓴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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