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추억 Jan 03. 2025

기둥

오늘 아침은 바람에 웅장한 파도소리가 난다.
겨울바람이 제법 대기를 진동시키며 나는 소리였다.
강한 찬 바람을 뚫고
어둑한 세상이 새벽인지 아침인지 헷갈리는 시각에
오늘도 묵묵히 출근하는 가장家長의 등을 보며 외쳤다.

"자기는 우리 집의 기둥이야! 기둥이라고!"

새벽인지 아침인지 헷갈리는 시각에
내 목소리는 대기를 제법 진동시켰다.
순간 겨울바람이 놀랬는지 진동을 멈췄고
남편은 멈추지도, 뒤돌아 보지 않고 간다.
그때였다. 내 목소리에 잠을 깬 아홉 살 소녀가
언제 내 곁으로 왔는지도 모르게 와서는 외쳤다.

"아빠! 아빠는 샤프심이에요!

우리 집의 샤프심이라구요!"

남편이 멈췄다.  뒤돌아 섰다. 다시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나저나 샤프심은... 이게 또 무슨 소리일까.
얼른 소녀에게 물어보았다.

"엥? 아빠가 왜 샤프심이야?"


"아빠가 기둥이라고요. 샤프심이 기둥이잖아요."

그렇다. 샤프심이 기둥, 가느다랗지만 길쭉한 기둥의 형태를 분명 지녔다. 남편이 한 마디하고 다시 뒤돌아 섰다.

"0.7미리. 나는..."

내가 아는 샤프심의 굵기는 0.3mm, 0.5mm, 0.7mm이다. 남편도 샤프심의 굵기를 그렇게 알고 있는 눈치였다. 자존심이 없는 듯 보였지만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었다.

존재감 있는 우리 집의 기둥, 제법 강한 바람을 뚫고

우리 집의 샤프심이 흔들림 없이 출근길을 걷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