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은 바람에 웅장한 파도소리가 난다.
겨울바람이 제법 대기를 진동시키며 나는 소리였다.
강한 찬 바람을 뚫고
어둑한 세상이 새벽인지 아침인지 헷갈리는 시각에
오늘도 묵묵히 출근하는 가장家長의 등을 보며 외쳤다.
"자기는 우리 집의 기둥이야! 기둥이라고!"
새벽인지 아침인지 헷갈리는 시각에
내 목소리는 대기를 제법 진동시켰다.
순간 겨울바람이 놀랬는지 진동을 멈췄고
남편은 멈추지도, 뒤돌아 보지 않고 간다.
그때였다. 내 목소리에 잠을 깬 아홉 살 소녀가
언제 내 곁으로 왔는지도 모르게 와서는 외쳤다.
"아빠! 아빠는 샤프심이에요!
우리 집의 샤프심이라구요!"
남편이 멈췄다. 뒤돌아 섰다. 다시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나저나 샤프심은... 이게 또 무슨 소리일까.
얼른 소녀에게 물어보았다.
"엥? 아빠가 왜 샤프심이야?"
"아빠가 기둥이라고요. 샤프심이 기둥이잖아요."
그렇다. 샤프심이 기둥, 가느다랗지만 길쭉한 기둥의 형태를 분명 지녔다. 남편이 한 마디하고 다시 뒤돌아 섰다.
"0.7미리. 나는..."
내가 아는 샤프심의 굵기는 0.3mm, 0.5mm, 0.7mm이다. 남편도 샤프심의 굵기를 그렇게 알고 있는 눈치였다. 자존심이 없는 듯 보였지만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었다.
존재감 있는 우리 집의 기둥, 제법 강한 바람을 뚫고
우리 집의 샤프심이 흔들림 없이 출근길을 걷는다.
Brunch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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