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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추억 Jan 04. 2025

운명

당신과 나 사이에는 공간의 벽이 있네요.
벽이 두터워서 상당한 거리의 벽이 되는 것이지만 나는 그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문제는 당신과 나 사이를 일부러 떨어트려 놓으려는 누군가의 방해의 손길, 지독한 시기와 맹렬한 질투의 마음이었는데 그게 참 너무했어요. 그래서 당신을 향해 갈 수가 없었는걸요. 나의 마음은 늘 당신을 향해 있었음에도, 당신과 하나가 될 운명이었음에도, 당신을 향해 나아갈 수가 없었는걸요.
슬펐어요.
당신과 나 사이에는 거대한 숲이 있었는데 숲 속의 모든 공백이 금속 같은 가시로 채워져 있었던 거죠. 당신과 나 사이에는 눈물의 강이 흐르고 있었는데 돛단배도 없어요. 만약 그 강을 건너게 된다면 그 수심은 참으로 깊은 늪 같아서 나의 몸은 건너지 못하고 나의 영혼만 당신에게 도착하게 될 테죠. 당신은 그래도 나를 느끼시려나요?
당신과 나 사이에는 빽빽한 사람들이 즐비합니다. 사람들에 가려서 당신이 보이지 않아요. 당신과 나 사이에는 강력한 시간의 벽도 흐르고 있었네요. 당신이 당신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갈 때에 나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으니까요. 그러니 당신은 나를 모르죠. 알 수가 없었죠. 만날 수가 없었죠. 그러나 나는 태어났고 같은 세상에서 현재 살아가고 있어요.
시간의 벽을 깨고 공간의 벽을 부수고, 거리의 벽을 압축하고... 이런 벽들을 제거해 줄 사람 어디 없나요?
우리를 방해하는 손길이 있다면 우리를 이어주는 손길도 있겠지요.
우리의 만남을 질투 시기하는 마음이 있다면 우리의 떨어짐을 측은해하는 마음도 있을 거예요. 우리의 의지대로 만날 수 없다면 기적의 손길만을 바라고 바라는 수밖에 없어요.
간절함이 노래되어 허공에 메아리 되어 울기를. 숲을 관통할 수 없다면 애틋한 우리 마음이 먼 길 숲을 둘러 걷다 부르트고 터져 버리기를. 간절함의 태양이 눈물의 강을 다 말리우기를.
당신이 보고파서 흐느끼는 나의 울음이 누군가의 귀에 들리고 누군가의 마음을 찢기우기를. 우리의 애달픔과 놀라운 기적들이 한데 모아지기를.
나 오늘도 상상해요. 벽을 뚫고 벽을 넘고 벽을 둘러 당신을 향해 걷는 상상을요. 벽이 모두 허물어져 당신을 향해 달리는 상상을요. 당신과 내가 만날 확률? 글쎄요, 확률이라는 단어는 무의미해요. 만나게 되어 있어요.
당신과 나 사이에 차원의 벽이 없는 게 다행입니다. 그게 희망이에요. 당신의 눈과 나의 눈이 마주 볼 겁니다. 우리가 이 세계를 떠나기 전.

다이소 뽀뽀 인형
운명, 결국 만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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