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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추억 Jan 02. 2025

낚시


"꼬마야, 뭘 낚고 있니?"
"물고기요."
"아 그치? 그렇구나. 물고기..."

김장 배추 뭘로 절였니? 랑 똑같은 수준의 질문을 해 버렸다.
낚시하는 꼬마에게 나는 무슨 대답을 듣고 싶었던 걸까. 꼬마가 그저 물고기를 잡는다는 말에 화들짝 잠이 깼다. 현실 세계로 돌아온 것이다.

'너에게 당연한 걸 물어서 미안해. 아직 세월 따위 낚을 나이는 아닌데 말이야. 그런데 꼬마야, 세월은 영원히 낚지 마. 그건 면도하는 걸 잊어버려서 턱수염도 깎지 않은 아저씨들이 어쩔 수 없이 낚는 거니까.
아저씨들의 거뭇거뭇 한 턱수염은 시큰시큰한 세월을 먹고 자란단다.
아줌마는 이 바다에서 물고기도 말고 세월도 말고 다른 뭐라도 하나 낚아가고 싶어.
다른 건 낚을 형편이 못 되어서 시를 낚아야지. 시라도 낚아야지.
미끼로 뭐를 쓰면 좋을까.
미끼가 될 만한 것들이 호주머니에 있나 뒤져볼게. 이런, 뒤적뒤적 해 보아도 아무것도 안 잡혀.  호주머니에 미세먼지도 없어.
꼬마야 혹시 미끼가 없어도 물고길 잡는 방법을 알고 있니? 미안, 이상한 질문을 또 해서.
그냥 미끼가 필요 없는 시를 낚아 볼게. 그런 게 있는지도 모르겠고 낚이려는 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미끼가 없어서 아무 입질도 없으면 아줌마가 긴 세월만 낚고 있게 되는 건 아니겠지? 아, 벌써부터 아줌마 턱이 거뭇거뭇 해지려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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