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통이란 주제로 삶이 쓰여져 갈 때에 비통이란 주제로 이미 글을 완성한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은 아무 슬픔도 없는 사람처럼 슬픔을 숨기고 웃고 있었다. 유쾌함 속에서도 뭔가 불안한 저 웃음, 저 애잔한 웃음이 언제 손바닥 뒤집듯 울음이 되어버릴지 몰라서 내가 더 불안했다.
웃음 속에 숨은 슬픔을 꽉 안아주고 싶었지만 애써 슬픔을 숨기고 웃고 있는데 슬픔을 들쑤시지 말고 나도 애써 모른 척해 줘야만 했다. 사람들 숲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나무 그늘 아래에서 그 사람은 얼마나 눈물을 떨구었을까. 그 눈물을 받아먹고 자란 나무는 더 짙은 그늘을 내어서 그 사람의 슬픔을 숨겨주었을 것이다.
오늘 아침, 그 사람의 비통을 읽고 나는 하루 종일 얼마나 훌쩍거렸는지 모른다. 설거지를 하면서 몇 번이나 눈물을 훔치려 고무장갑을 벗었다.
내가 볼 수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누군가의 슬픔을 발견하는 사람의 가슴속에는 역시나 더 큰 슬픔이 가득 차 있는 것.
1. 슬픈 사람,
2. 그 슬픈 사람의 슬픔을 발견하는 사람,
3.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멀리서 지켜보는 나,
나는 이렇게 세 사람을 한꺼번에 본다.
하루의 마감, 그 세 사람은 지금 시린 가슴이 되어 누워 있을까, 아니면 다시 유쾌한 천성이 되어 가여운 꿈속을 헤매고 있을까. 비통해하는 사람의 꿈속으로 내가 순간 이동을 해서 그 사람의 눈물 닦아주고 그 사람의 손을 잡아주고 그 사람을 한참 동안이나 안아주고 싶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고자 삶은 비통이란 주제를 던져 준다. 그 주제의 갈피를 잡고 나머지 삶을 써 내려간다.
비통이란 주제가 특별하다 말하기엔 너무나 가혹한 면이 있기에 특수하다로 설명 짓고 다 특수하게 사는 것 같아서 평범한 건지도 모른다는 말은 속으로만 읊조린다. 비통이란 주제의 삶이 인생의 중요한 의미를 알게 해 주어서 참 감사한 선물이 되어준다는 말은 아직 입 밖으로는 꺼내는 걸 보류하기로 한다. 그것이 선물이라고 말해주려 했는데 비통의 상처들이 아직 아물지 않아 쓰라린 것이 보인다. 누군가가 끄적인 비통이란 주제의 삶을 아침에 읽게 되었는데 그로 인해 나는 울면서 설거지를 하고, 운전을 하고, 밥을 삼키고, 하루를 마감하려 누웠다. 그러느라 하루 종일 나의 비통을 잊어 먹었다. 비통이란 주제의 삶이 내게 가르친 것은 누군가의 비통에 순수한 눈물을 떨구는 법이었다. 나는 그것을 내 마음대로 사랑이라 규정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