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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추억

가벼운 걸 들었는데 무거워. 부드러운 바람을 맞았는데 아프다. 햇살을 쬐는데 휘발성 좋게 탄다. 햇살을 잡았더니 햇살은 바람이 더 쉽게 잡힐 거라 했어. 바람은 자기보다 물살이 더 잘 잡힌대. 다 거짓말쟁이들. 붙잡는 내 힘보다 빠져나가는 힘이 더 셀 때 힘없는 손가락 관절들이 미워. 붙잡기 전에 놔줘야지. 토라진 다짐, 생의 존심이 살아 있어서. 잠깐만 기다려줘. 존심 버리고 말했는데 빠져나간다. 병 걸려 빠져나가서 배수구 트랩을 덮은 머리숱만큼이나. 강산이 네 번 바뀐 걸 지켜봤다고 불혹不惑은 아니야. 공깃돌보다 못한 돌멩이에 발목을 접질렸지. 판판한 땅에서 황당 꽈당 넘어지는 내가 아이면 아이지. 발바닥이 잘못했는데 손바닥이 쓸렸어. 손바닥에 박힌 모래가 비웃듯 햇살에 반짝거렸지. 나는 여전히 버드나무 귀신머리처럼 흔들려. 붙잡는 법을 간신히 익혀서 불혹인 듯. 벤치에 앉아 몸을 붙잡아. 등에 흙 좀 묻지 뭐. 남의 집 흙담에 기댄다. 휘청임을 시집 한 권에 기댔어. 떨군 눈물도 받아준다. 움직거리는 것엔 안 기대. 사람은 바람 부는 날 구름처럼 저만치 움직여 사라지니까.
머리가 띵하고 목구멍 따갑다. 내겐 칼처럼 초저녁 가을바람이 부는데 어디에 기댈까. 마스크 쓰는 걸 깜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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