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네가 나만큼 힘들었다는 걸 알았을 때 위로가 되었어. 너의 즐거운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도 내가 위로를 받았어야 했는데 나는 어쩐 일인지 네가 힘들었다는 이야기에 위로를 받았던 거야. 이건 진짜 미안한 일이라고 생각해.
나만 유독 비밀리에 힘들었다고 억울했던 건 아냐.
나는 그냥 내가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해. 나의 눈물들은 내 선택 없이 흘러 내려서 물 웅덩이처럼 고여 버렸으니까!
나는 네가 해 준 말이 너무 좋았어. 네 아픔을 네 안 깊은 구석에 넣어 두고서 다른 사람들을 바라본다 했었지.
그들이 너보다 더 큰 슬픔 있다면 같이 아파하고
너보다 작은 슬픔이면 위로가 되어주려고 너의 아픔을 꺼내 보인다고 했었어.
너의 아픔을 내게 보여줘서 고마워. 이건 진짜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해.
꺼낼 때마다 고통스러운 너의 아픔을 너는 나를 위해서 꺼냈지.
미안해, 나는 못 꺼내.
네가 힘들었는데 왜 내가 위로를 받고 있을까. 나는 죄책감이 들었어.
내가 좋아하는 네가 아팠는데,
내가 사랑하는 네가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살아왔는데 그걸로 내가 위로를 삼다니... 혼자 서 있기도 버거울 너의 그 아픔에 나마저 기대려 하다니...
내가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미안해.
내가 네 덕분에 많은 위로를 받았어. 그거 알아? 전 세계 8억 명이 기아에 시달리고 있대. 전쟁과 내란을 치르는 사람들이 이 순간에도 있어. 나는 그들에게도 너에게 사과했던 것처럼 용서를 구하려 해.
(당신들을 나의 행복의 잣대로 삼아 내가 행복할 수 있다니 미안해요. 나는 당신들의 눈물과 비명을 떠올리며 나의 다행, 나의 감사로 여기고 살아요. 당신들을 나보다 더 재수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여기면서 내 처지를 위안 삼아요. 나, 나빴죠? 내 맘대로 무례해서 미안합니다.)
나는 네가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나의 이기적인 위로로 삼아버렸어. 그렇게 내가 살아갈 작은 화단에 거름으로 흩뿌렸어. 너의 고통을 내가 어떻게 이렇게 대할 수 있을까. 기분이 몹시 불쾌하지? 미안해 정말.
지루하게 흘렀던 네 고통의 시간들이 나에게 또 어떤 역할을 하는 줄 아니?
글쎄 현재까지의 내 힘겨움들을 빛의 속도로 아주 빠르게, 그것도 아주 가볍게 날게 해. 미안해. 미안해.
이게 아인슈타인이 말한 그 상대성이론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