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있는 것은 아름답다
무지개나
별이나
벼랑에 피는 꽃이나
멀리 있는 것은
손에 닿을 수 없는 까닭에
아름답다
사랑하는 사람아,
이별을 서러워하지 마라,
내 나이의 이별이란 헤어지는 일이 아니라
단지
멀어지는 일일 뿐이다
네가 보낸 마지막 편지를 읽기 위해선 이제
돋보기가 필요한 나이,
늙는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 보낸다는
것이다
머얼리서 바라볼 줄을
안다는 것이다
헤어질 결심을 하기까지 우리에게는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처음에는 어렴풋
깊은 산속에 피어오르는 실낱같은 연기였을 게다.
아주 멀리서 보면 연기인가 싶을 정도로 가늘었던 생각의 실이
조금씩 엮이면서 매듭이 된 것은 서너 달, 아니 몇 년 전일 수도 있다.
생각이란 하나에 잠식당하기 시작하면
굴러 떨어지는 눈덩이처럼
온갖 생각이란 생각까지 달라붙게 해
몸집을 불리기 마련이니까.
이별을 하는데
삼 년이 걸린 지인의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마흔이 넘어, 뒤늦게 연애를 시작한 그녀는
아쉽게도 연애 칠 연차에 접어들어서야 미래에 대한
두 사람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조금 늦은 나이에 만났지만,
결혼을 해 한 집에서 늙어가길 바랐던 지인과 달리
상대 남자는 결혼 할 마음이 없었다.
지인을 사랑하지만, 결혼이라는 제도에 자신을
구속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의 마음을 알게 된 후
얄궂게도 으스름달 하나가 문득문득 떠올라
그녀를 비추었다.
'예순, 일흔의 할머니가 되어서도 이렇게 연애만 해야 한다고?
그에게 있어 나는 어떤 존재이고 어떤 의미일까?
결혼을 할 만큼 나를 사랑하는 것은 아닌가?'
이런 궁금증이 꼬리를 물었다.
그가 미워서도 아니고 나쁜 사람이 아닌 것도 확실한데
자신과 놀고만 싶어 하는 그에게 서운함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지인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사랑의 끈을 놓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던
마음의 벽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녀는
아주 조금씩,
서서히,
나아갈 수 없다는 것에 지쳐갔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지쳐간 것은 그녀였고
남자는 변함없이 그녀와의 연애를 즐겼으며
사랑에 올인하지 않는 모습은 의연해 보이기까지 했다.
남자는 선하고 친절한 사람이었지만
둘 사이에 맡겨진 역할도,
서로를 책임지거나 보호해야 할 의무도,
이렇게 해야 한다는 규칙이나 구속도
모든 것이 느슨한 상태에서
두 사람의 사랑은 점점 조용해져 갔다.
그랬다.
그들은 오랜 연애 후의 삶을 준비하지 못했다.
어쩌면 둘의 사랑은
나무 그늘에 앉아 무력하게 더위를 식히고 있는 한 마리 개였다.
시간은 좁고 촘촘한 눈금 사이를 더디게 지나갔으며
그녀는 이 정체되고 지루한 사랑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폭발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돌아보면 칠 년을 같은 사람과 같은 놀이를 하며 지냈으니
지루할 만하다 싶다가도 사랑의 끝이 지루함이라니,
씁쓸한 웃음이 나온다는 지인의 말.
지금도 그녀는 말한다.
수십 년 이상 연애만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숨 막히는 생각에서
벗어난 것 자체로 살 거 같다고.
그렇게 그녀는 이별을 하기까지 삼 년이라는
시간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버텨왔다.
십 년 동안 서로의 즐거움이었고
필요였고
좋은 친구였던 두 사람.
지금껏
서로를 완전히 소유하지 않기 위해,
가끔은 완전한 소유를 꿈꾸기도 하면서,
동시에 소유하지 않았다는 것을 소유했다면
이제는 충분히, 질리도록 한 연애를 소유하게 된 셈이다.
부디, 그 소유가
누가 덜 사랑하고 더 사랑하는지의 척도가 아니라
서랍장 한편
말쑥하게 접어 두었다가,
볕 좋은 날 꺼내 입어 볼 수 있는
추억이라는 이름의
옷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