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이라는 에너지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
이기철
벚꽃 그늘 아래 잠시 생애를 벗어놓아 보렴
입던 옷 신던 신발 벗어놓고
누구의 아비 누구의 남편도 벗어놓고
햇살처럼 쨍쨍한 맨몸으로 앉아보렴
직업도 이름도 벗어놓고
본적도 주소도 벗어놓고
구름처럼 하이얗게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
그러면 늘 무겁고 불편한 오늘과
저당 잡힌 내일이
새의 날개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벚꽃 그늘 아래 한 며칠
두근거리는 생애를 벗어놓아 보렴
그리움도 서러움도 벗어놓고
사랑도 미움도 벗어놓고
바람처럼 잘 씻긴 알몸으로 앉아보렴
더 걸어야 닿는 집도
더 부서져야 완성되는 하루도
도전처럼 초조한 생각도
늘 가볍기만 한 적금통장도 벗어놓고
벚꽃 그늘처럼 청정하게 앉아보렴
그러면 용서할 것도 용서받을 것도 없는
우리 삶
벌떼 잉잉거리는 벚꽃처럼
넉넉하고 싱싱해짐을 알 것이다
그대, 흐린 삶이 노래처럼 즐거워지길 원하거든
이미 벚꽃 스친 바람이 노래가 된
벚꽃 그늘로 오렴
때로 우리는 오늘 하루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었으면 할 때가 있다.
그래서 여행을 가지만 정작 여행에서 남는 건 또다른 고단함을 주기도 한다.
이 시는 거창한 쉼이 아니라 하루 속에서 자기 자신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라고 한다.
그 곳이 어디든 삶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쉼을 얻어보라고.
사람은 자신이 어떤 에너지를 가졌느냐에 따라
삶의 모양이 만들어지고 지칭된다.
전기를 에너지로 쓰면 전기차,
수소를 에너지로 쓰고 있으면 수소차이듯.
가족의 사랑이 될 수도 있고,
꿈을 향해 달려가는 굳은 의지일 수도 있고,
신을 향한 구별된 믿음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에너지가 없이는
바퀴빠진 자동차처럼 잘 굴러갈 수 없다는 것이다.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나
출산한 열 명의 자녀 중
다섯을 먼저 보내고
일흔 여섯의 나이에 화가의 길로 들어선,
그랜마 모지스는 이런 말을 했다.
'내 삶은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어쩌면 그녀의 에너지는 고난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 못지 않게
고난을 에너지로 삼으며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면
틀린 말만은 아니리라.
이 시는
위로보다는 쉼이 필요한,
그들을 위한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