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다이어리의 반격

[D-272] 메모는 완성된지 않은 채로 완성된다.

by Mooon

D-272. Sentence

메모는 완성된지 않은 채로 완성된다.


@데스커라운즈_워크투게더워크샵_김중혁



느낌의 시작


메모는 완성되지 않은 채로 완성된다. 적다 만 문장, 삐뚤빼뚤한 글씨, 정체불명의 낙서들. 누군가는 ‘이게 무슨 기록이냐’ 웃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 불완전한 메모에서 오히려 나다운 흔적을 발견한다.



마음의 흐름


특강이나 세미나에 가면 으레 노트북이나 패드를 켜지만, 늘 어색하다. 화면 속 깔끔한 폰트보다 여전히 종이 냄새와 펜촉이 긁히는 소리를 더 사랑한다. 인스타그램 속 필기 장인들처럼 빼곡히 정리된 글씨와 알록달록한 포스트잇은 내 스타일이 아니다. 내 가방 속 다이어리와 펜은 언제나 준비되어 있지만, 그 안에 들어가는 건 차라리 ‘즉흥 공연’에 가깝다.


매일 아침, 오늘의 할 일을 적어두는 건 작은 의식 같다. 스케줄 앱이나 메모장도 충분히 있지만, 왠지 차갑고 건조하다. 손으로 적을 때 비로소 마음도 적히는 것 같다. 문제는 그렇게 공들여 적은 다이어리들을 이사할 때마다, 대청소할 때마다 버려왔다는 것. 그 순간의 행복만 누리고 흔적은 늘 무심하게 흘려보냈다.


지금 쓰고 있는 다이어리는 조금 다르다. 작년 친구와 함께 단둘이 처음으로 강릉 솔올미술관 개관 특강에 갔다가 관장님께 선물 받은 것이다. 솔직히 선물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그대로 책장에 방치했을 텐데, 이상하게 손이 자주 갔다. 아마 그날의 공기와 기억이 함께 들어 있어서일까. 애정 어린 다이어리지만, 정작 안에 적힌 건 뒤죽박죽이다. 오늘의 할 일 리스트와 행정서류 체크리스트, 불현듯 떠오른 아이디어, 심심한 둘째의 낙서까지. 펼쳐보면 ‘이게 뭐지?’ 싶은 혼돈의 기록들. 그런데 가만 보면, 불완전하고 중구난방인 모습이 꼭 나를 닮았다.


그래서 결심했다. 이제는 다이어리를 버리지 않겠다고. 예쁘지도, 체계적이지도 않지만 그게 곧 내 시간이고 내 생각이고 내 하루라는 증거이니까. 앞으로는 다이어리가 쌓이는 만큼, 나의 삶도 더 단단하게 쌓여가리라. 오늘 확인해보니 벌써 절반을 채웠다. 남은 절반도 성실하게, 아니 솔직하게 가끔은 삐뚤빼뚤, 때로는 대충 채워가면 된다. 그게 바로 나의 기록 방식이니까.



내 안의 한 줄

불완전해도 괜찮다.

메모는 대충 써도, 결국 내 삶을 꽉 채운다.


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할 언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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