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06] 커피땅콩
D-306. Sentence
커피땅콩
느낌의 시작
커피땅콩에서 명절이 시작되었다. 달력으로는 연휴가 이미 열렸지만, 시댁과 친정에 가는 오늘부터가 내게는 진짜 명절이다. 어제 늦은 저녁, 문 닫기 전 홈플러스의 밝은 형광등 아래서 우리는 장을 봤다. 점심을 건너뛰어 배가 고팠던 첫째를 위해 초밥과 미니족발을 카트에 담았다. 계산대 쪽으로 향하던 그 순간, 선반 위에서 반짝이는 봉지 하나, ‘커피땅콩’의 갈색 포장이 나를 멈춰 세웠다. 나의 명절은 그 봉지를 집어 드는 손끝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마음의 흐름
엄마는 평생 여리여리했다. 아담한 키에 43kg을 넘기신 적이 거의 없다. 식성도 소박하고 한정적이다. 주변에서 몸에 좋다는 것을 권해도, 엄마는 늘 “좋아하는 것만 조금” 드신다. 요즘 엄마가 좋아하는 건 커피땅콩. 바쁜 일정이 없는 날에도 이른 아침 먼저 일어나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거실에 앉아 막 내린 커피 한 잔과 커피땅콩 몇 알을 천천히 드신다. 한때는 강냉이, 어떤 날은 떡과 빵—엄마의 아침은 늘 ‘조금의 기쁨’으로 시작되었다.
나는 매주 수요일, 안성에서 오후 수업을 마치고 고속버스터미널역에 내리면 습관처럼 신세계백화점으로 향했다. 엄마가 드실 만한 떡이나 빵을 하나씩 골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뭘 이런 걸 사오니” 하시면서도, 늦은 밤에도 곧장 그 작은 디저트를 조용히 꺼내 드셨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 빵과 떡 안에 내가 넣어 보낸 마음을 엄마가 그대로 꺼내 드시고 있었다는 걸. 먹는 것에는 별 흥미가 없으신 분인데도, 너무 맛있다고 하시며 내가 사 온 건 유난히 잘 드셨다. 그 모습을 보면 마음이 평안해졌다.
어제 계산대 앞에서 커피땅콩을 보자마자, 긴 연휴 동안 혼자 집을 지키실 엄마가 떠올랐다. 봉지를 들고 사진을 찍어 “이거 사다 놓을게요”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답장 하나 “오야.” 엄마가 기분 좋으실 때 보내는 짧고 둥근 그 말. 화면 속 두 글자가 나를 웃게 했다. 마음을 전달하는 일은 거창하지 않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것을 떠올리는 기억력, 카트에서 계산대로 이어지는 작은 결심, 사진 한 장과 “사다 놓을게요”라는 단정한 문장. 명절은 결국 그런 마음의 왕복으로 완성되는 것 아닐까.
명절엔 부모님을 찾아뵙고 평소보다 오래 함께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길이가 중요한 건 아닌 것 같다. 오래가 아니라 ‘오롯이’가 더 어울린다. 10분이면 어떻고, 1시간이면 또 어떤가. 부엌에서 설거지를 마치고 식탁에 마주 앉아 커피를 한 모금 나누는 그 ‘짧은 동시에 충분한’ 시간이 가장 명절 같다. 우리의 안부가 서로의 일상에 무사히 닿았음을 확인하는 시간. 그게 행복의 단위가 된다.
창밖에는 예정에 없던 비가 쏟아진다. 연휴 초입의 공기와 묘하게 어울리는 빗소리다. 우리는 곧 용인으로 내려갈 예정이다. 빗길을 달리며 어떤 음악을 들을지, 플레이리스트를 고민한다. 아마도 말이 과하지 않은 노래들, 가사가 조용히 등을 받쳐주는 곡들로 채울 것이다. 길지만 또 짧을 이 연휴를, 너무 욕심내지 않고 순간마다 채워보고 싶다. 카트 앞에서 멈춘 손끝처럼, 필요한 자리에서 잠깐 멈추고, 눈을 맞추고, 마음을 건넨 다음 다시 천천히 걸어가는 방식으로.
커피땅콩 한 봉지는 작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건 결코 작지 않다. ‘오야’라는 두 글자를 받아 든 오늘, 나는 다시 배운다. 사랑은 큰 제사상의 화려함보다, 일상의 봉지 소리가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는 것을. 비를 뚫고 가는 차 안에서, 나는 오늘도 그 소박한 소리를 듣는다. 괜찮아. 우리는 잘 가고 있다.
내 안의 한 줄
사랑은 커피땅콩 한 봉지의 무게로도 충분하다.
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할 언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