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13] 다양한 '별짓'
D-313. Sentence
다양한 '별짓'
느낌의 시작
“별짓 다 해본다.” 요즘 내 입에서 자주 나오는 말이다. 누군가의 ‘별짓’은 나에게 ‘새로운 시도’이고, 누군가의 ‘도전’은 나에게 ‘철드는 과정’이 된다. 지난 추석, 삼척에서 1박 2일을 보내고 오늘 저녁, 다시 비 오는 고속도로를 달려 그곳으로 향했다. “이게 현실인가. 꿈인가” 하며 혼자 살짝 웃었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별짓’들이 나를 자라게 만든다. 철이 드는 동시에, 내 삶의 영역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
마음의 흐름
생각해보면, 별짓이라는 단어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별거 아닌 일에도 호들갑 떨며 시도해보는 사람, 그 별스러움 속에 삶의 확장이 숨어 있다. 누군가에겐 평범한 일상이 나에겐 별짓일 수 있고, 내겐 익숙한 일상이 누군가에겐 전혀 새로운 별짓일 수도 있다.
늘 같은 사람만 보고, 같은 길만 걷고, 같은 음식을 먹는다면 내 세상은 결국 그만큼으로 좁아진다. 나는 그 제한된 세상 안에서만 안심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조금이라도 낯선 일을 택하려 한다. ‘한 번쯤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면, 예전처럼 “괜히…” 하고 접는 대신, “그래, 그냥 해보자.” 하고 나선다.
돌아보면, 젊은 시절 나는 용기가 부족했다. 캐나다 어학연수 시절에도, 유학의 문 앞까지 갔다가 돌아섰고, 미국 교환학생에 합격하고도 이것저것 핑계를 대며 포기했다. 강남의 유학원을 돌며 꿈꾸던 대학원 유학길 역시 결국 “돈이 없어서”라는 이유로 국내 대학원으로 차선을 선택했다. 이제 와 돌이켜보니, 그건 돈이 아니라 용기의 문제였다.
그때의 나는 늘 계산적이었다. 안전한 길, 무난한 대안, 후회하지 않을 선택. 하지만 그 ‘안전함’이야말로 나를 좁은 세계에 가두고 있었음을 이제야 안다. 이제는 다르다. 두 아들을 키우며 바라게 된 건 오히려 ‘넓고 깊은 삶’이다. 그들이 더 많은 세상을 보고, 더 깊은 감정을 느끼길 바란다. 그런 마음을 품다 보니, 나 자신도 더 넓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삶을 단단하게 만드는 건 성공보다 ‘별짓’들이다. 조금은 엉성하고, 조금은 무모하지만, 그 무모함 속에서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
내 안의 한 줄
삶을 단단하게 만드는 건 성공보다 다양한 ‘별짓’이다.
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할 언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