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이 쉽지않은 엄마의 길.

[D-314] 안 생길 것 같죠? 생겨요 좋은 일

by Mooon

D-314. Sentence

안 생길 것 같죠? 생겨요 좋은 일

IMG_1044.HEIC @삼척 솔비치

느낌의 시작


어젯밤 삼척에 도착했다. 오늘 오후엔 삼척시 관계자분들과 지역캠프를 마치고, 솔비치 카페에 들러 앞으로의 일정을 정리한 뒤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이곳은 시아버님의 칠순 여행으로 처음 왔던 곳이다. 그땐 막 오픈한 리조트의 새 기운이 가득했는데, 오늘 다시 찾은 솔비치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생각보다 일찍 끝난 지역캠프 덕에, 팀원들과 잠시 정리 시간을 갖고자 고민하다가 자연스레 이곳으로 발길이 향했다. 로비 문을 열자마자 창 가득 펼쳐진 바다. 그 순간, 입 밖으로 절로 새어 나왔다. “이거지, 바로 이거.”

쏟아지던 비 속, 앞이 보이지 않던 안갯속 고속도로를 달리며 느꼈던 공포심도, 오늘 오전 학생들에게 삼척에서 온라인 수업을 하며 느꼈던 미안함도, 삼척시청 경제과 팀장님, 서울시 담당 주무관님, 그리고 시 관계자분들과의 캠프에서 느꼈던 긴장감도, 그 모든 게 파도소리에 씻겨 내려갔다. 사실 아무 생각 없이 파도만 보고 싶었다. 그냥 숙소로 돌아가 따뜻한 물에 샤워하고, 좋아하는 영화 한 편을 보며 몸과 마음을 녹이고 싶었다. 그런데 그 모든 상상이 단 한 줄의 카톡 알림으로 깨져버렸다.



마음의 흐름


첫째의 수학학원 원장님이었다. “시험이 일주일밖에 남지않았는데 완전 엉망진창이네요.” 그 문장 하나에 머리가 하얘졌다. 연휴 동안 과외 선생님이 매일 풀 수 있는 수학 숙제를 내주셨고, 그걸 사진으로 찍어 매일 카톡으로 보내기로 약속했었다는 것도 오늘 알았다. 그런데 단 한 번도 보내지 않았다. 게다가 다음 주가 중간고사인데, 교과서를 아예 집에 가져오지 않아 연휴 내내 숙제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늘은 연휴가 끝난 뒤 첫 과외가 있는 날이었다. 아침에 학교에 가서 교과서를 챙기고, 선생님 오시기 전에 풀 수 있는 만큼 숙제를 하라고 분명 말했다. 그런데 아들은 또 교과서를 안 가져왔다. 그 사실을 미리 알았으면서도, 비가 와서 귀찮다며 학교에 가지 않았다. 그 대신, 편의점에서 라면을 사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나는 로비 한가운데서 전화를 걸었고, 사람들이 보든 말든 상관없이 쏟아냈다. “도대체 왜 약속을 이렇게 어겨?” “왜 도와주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무시하니?” “너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들을 어떻게 이렇게 다 무너뜨리니?”


전화를 끊고 나서도 진정이 되지 않았다. 눈앞의 바다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회의 중에도, 대화 중에도, 마음은 계속 끓어올랐다. 완전히 무시당한 기분이었다. 과외도 이번 주로 마지막인데, 이렇게 기회를 흘려보내는 아들이 너무 한심하고, 너무 화가 났다. 그러다 문득 창밖에 걸린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안 생길 것 같죠? 생겨요, 좋은 일.”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가 조금씩 가라앉았다. 그래, 이미 좋은 일은 생겼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삼척까지 와서 의미 있는 일을 마쳤고, 비 속에서도 무사히 일정을 끝냈고, 이렇게 다시 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 그게 바로 좋은 일 아닌가. 좋은 일이란, 누가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내가 흔들리지 않고 내 중심을 지켜내는 순간들 속에 있다. 아이의 일로 마음이 흔들리고, 피곤에 무너져도, 결국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건 나 자신이다.



내 안의 한 줄

좋은 일은 흔들리지 않고 살아내는 나의 자세에서 생긴다.


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할 언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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