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악의 임금 선조, 죽다!
선조는 중종의 서손이며 조선 명종의 이복 조카이고,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 이초(李岹)와 하동부대부인(河東府大夫人) 정씨(鄭氏)의 아들로서, 비는 의인왕후(懿仁) 박씨, 계비는 인목왕후(仁穆) 김씨이다. 조선 최초의 서자 출신 임금이며, 최초의 방계 혈통의 임금이기도 하다.
선조의 즉위를 계기로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한 사림은 척신정치하에서 성장한 구세력의 제거를 둘러싸고 전배(前輩)와 후배(後輩)가 대립하게 되었다. 전배는 심의겸을 중심으로 하는 서인이, 후배는 김효원을 중심으로 하는 동인이 되었다. 서인의 주요인물은 박순(朴淳)·정철(鄭澈)·윤두수(尹斗壽) 등이고 동인의 주요인물은 류성룡(柳成龍)·이산해(李山海) 등이었으며, 각각 이이와 이황의 학문에 영향을 받고 있었으므로 학풍·학연을 배경으로 한 대립의 양상도 띠었다.
게다가, 건저 문제로(왕 세자를 정하는 문제) 정철이 파면되면서 동인이 집권하게 되었으나, 정철의 처벌을 둘러싸고 온건파는 남인(南人)으로, 강경파는 북인(北人)으로 다시 나뉘었다. 이 와중에 선조는 우왕좌왕하는 통에 대대로 조선의 발목을 잡는 붕당 정치가 정착하게 된다.
여기에 더하여 동인의 내분과 파벌 대립을 선조는 초창기 류성룡의 남인을 지지하다가 후반 이항복의 서인세력을 포섭하였고, 이후 곽재우 등 의병장들의 세력으로 구성된 북인에게 정권을 넘겨주며 환국정치의 레퍼런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임진왜란 시기 선조의 행위는 원체 많이들 알고 있어서 생략하기로 한다.
더군다나 전쟁 후 전란을 수습하면서 많은 대군(왕자),옹주(공주)들이 넉넉하게 살기를 원했고 그래서 선조는 국가에서 관리하는 토지 궁방전 정책을 시작하는데, 이는 결국 조선 국고의 낭비가 이어지게 되었고 이로 인해 후반기에 들어서 농민 봉기가 일어나게 된 원인 중에 하나로 속하게 되는 잘못된 정책의 대표적 사례로 손꼽힌다.
하나부터 열까지 속속들이 살펴 보았을 때 조선 역대 왕중 최악의 투탑이라 할 수 있는 왕(다른 한명은 인조), 그 선조가 죽은 날이 1608년 3월 16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