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을 4~5개월 더 다니면서도 회사는 늘 괴로웠고, 삶이 몹시 지겨웠으며 또 허망했다. 우울감은 사라지지 않았고 자해는 계속되었다. 그렇게 계절이 바뀔 때 즈음 우연히 교통사고가 났다. 지나가던 차에 치였다.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약간의 통증과 후유증으로 입원을 했다. 병원에 입원하여 시간을 혼자 보내면서 생각할 시간이 많아졌다.
그 와중에도 자해 충동은 여전했다. 병원에는 칼이 없었으므로 1층에 있는 편의점에 들러 굳이 눈썹 깎는 면도칼을 사 가지고 돌아왔다. 그리고 화장실에서도 그었다. 그런 상황에서까지 도구를 사서 자해를 해야만 나아지는 충동은 가끔 나를 죽고 싶게 만들기도 했다. 지금 이게 정상적인 상황이 맞는 거야? 나는 점점 미친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회사가 우울증의 원인이었던 것은 아니다. 말했다시피 첫 정신과도 아니었고, 상황에 따른 우울감과 스트레스가 찾아올 때면 정신과를 찾았으니까. 그러나 한두 달 약을 먹다가 자의로 그만두기 일쑤였고, 가장 큰 치료 기간은 약 6개월이었다. 그렇게 약 먹을 때 잠시 괜찮아졌다가 좀 나아졌다 싶으면 자의로 단약 하여 우울증을 악화시키기를 반복하면서, 나는 이번에 아주 호된 우울증을 겪어야 했다. 여기에는 회사 스트레스가 결정적인 요인이었긴 하지만 그 밖에도 많은 상황적 요인들이 있었다.
나는 어쩌면 이 우울증이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라 느꼈고, 마치 우울이라는 녹지 않는 만년설이 나의 온몸을 덮을 것만 같았다. 다섯 번째 정신과 문을 두드리고 나서도 깨닫지 못했던 사실을, 나는 사고 후 늦은 밤에 어느 병원의 입원실에 달린 작은 화장실에서 눈썹칼을 손에 든 채 깨달았다. 내가 자의적으로 치료를 중단할 일이 아님을.
퇴원해서 회사를 다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삼 개월 내에 죽을 용기가 생길 것 같았다. 하지만 언젠가 내가 스스로 끝을 맺는다고 하더라도 지금 당장은 아직 죽고 싶지 않았다. 그 생각 끝에 나는 겨우 퇴사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갑자기 찾아온 우울증은 갑자기 퇴사한다고 갑자기 사라져 주지는 않았다. 퇴사를 하고 난 후에도 휘몰아치는 우울감과 자해 충동 및 자살 사고는 계속되었고, 실제로 수 차례의 자해로 인해 응급실을 몇 번씩이나 왔다 갔다 하며, 벌어 놓은 돈을 병원비로 까먹기 일쑤였다.
재취업을 하려고 공부하다가 약을 털어먹기도 하고, 손목을 긋기도 했다. 문득 이 모든 게 무슨 소용인가 싶어졌다. 애초에 회사가 힘들다고 그만뒀는데, 아무것도 달라진 것 없이 다시 일을 찾는다고 나아질까?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문득 열심히 걷던 눈앞의 길이 끊긴 것처럼 허탈하고 불안해졌다.
여기까지가 내가 이 글을 쓰게 되기까지의 배경이다. 지금 내게 더 중요한 것. 좀 더 일상적인 것들을 되찾는 시간이 필요했다. 죽고 싶은데 살기 위해 할 것들이 눈앞에 있었다. 나는 나를 돌볼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 내가 해야 할 것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시간.
살아가기 위해 보통의 것들에서 의미를 찾으며 이야기를 쓰겠다고 스스로 말했지만, 앞으로 쓰게 될 이야기들이 마냥 밝거나 긍정적인 결론으로 끝나진 않을 것이다. 아직 우울증을 치료하는 중이기에, 때로는 글 안에서 음울하기도 하고 부정적인 마음들이 둥둥 떠다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솔직한 마음들조차도 숨김없이 이야기하고 싶다. 누군가 내 이야기에 조금이라도 공감한다면 그것도 감사하고 반가운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