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이유 한 가지 때문에 살면서 누릴 수 있는 많은 좋은 것들을 포기할 수 없잖아요.”
나에게 살아야 할 이유는 너무나 많다.
우선 내게는 가족이 있다. 어떤 이유로든 다 큰 자식을 먼저 보낼 부모님을 생각하면, 나는 생각만으로도 이미 못할 짓을 저지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봄에 피는 튤립을 좋아한다. 벚꽃도 좋고 장미도 좋다. 여름에는 수국과 능소화가 그렇게 예쁘다. 언젠가 죽음을 떠올릴 때, 나는 내가 좋아하는 튤립을 마음껏 보기 전까지는 죽기 아깝겠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겨울은 싫어하지만 귤과 크림이 들어 있는 붕어빵은 좋다. 무거운 후드티와 패딩은 싫은데도, 곱게 짜인 니트는 어쩐지 따스해서 좋다.
아침에 카카오톡으로 늘 굿모닝 이모티콘을 주고받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와는 같은 정신과 환자 동지(?)로서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는데, 한 번은 자살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 친구는 내가 만약에 자살해서 죽게 된다면 본인도 충격을 받고 너무 슬플 것 같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 친구는 내가 조금 우울한 감정을 고백하자마자 별안간 자기 차로 드라이브를 하러 가자며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남들은 뜯어말리던 내 퇴사에 대해, 당장 그만 두라며 사람 목숨이 우선 아니냐고 했다.
내가 죽고 싶은 이유는 생각해 보면 정말 몇 개 없다.
그저 너무 잘못 살아온 것 같은 과거에 대한 자책과 후회, 앞으로 수십 년을 잘살아야 한다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그 외에도 죽고 싶은 이유를 떠올려 보라고 하면 정말 모르겠다.
그럼에도 죽고 싶은 마음은 내게 한없이 무겁다.
살아야 할 이유 수십, 수백 개를 한데 모아서 저울 한 쪽에 쌓아 놓고, 반대편 저울 한 쪽에는 죽고 싶은 이유 두어 개를 올려 놓는다. 그러면 그 수십, 수백 개의 살고 싶은, 살아야 하는 이유들이 가라앉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내 저울은 항상 두어 개의 죽고 싶은 이유에게로 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