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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는 기쁘다.

_ 솔

by small girl


어느 집에서나 막내는 사랑을 독차지하고 윗 형제자매의 미움을 받는 순간들이 있다.

나 역시 기억하지 못 하던 순간에 언니오빠들이 날 위해 희생하고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던 시절이 있었겠지. 그렇게 어리광을 부릴 나이가 영원하면 좋으련만, 어릴 때와 다르게 어려워진 우리집 형편에 맞게 나는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했다. 앞서 말했듯 받는 게 익숙하던 나는 무언가 놓는다는 것 자체가 낯설었고 마냥 싫었다. 나의 것을 뺏긴다는 건 처음 겪어보는 박탈감이니까.


그래서 그냥 모든 걸 놓았다. 뭐 누가 보기엔 일종의 방황이나 사춘기 같은 시기라 여길 수 있겠지만, 나는 어느 순간부터 혼자 인생의 의미같은 걸 찾기 시작했다. 고등학생이라는 어리다고 하기엔 약간 애매한 나이를 겪으며 어른의 흉내를 내고 싶어했고, 벌써부터 지루해진 인생에서 종착지를 찾고 싶었다.


정확한 이유는 없지만, 평온하던 우리 집에 아빠의 도박으로 모두가 많은 걸 내려두고 돈을 벌거나 꿈을 포기하거나 하는 상황을 마주하면서 나 또한 무언가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게 하필 고등학생 진로를 정할 시기였다는 게 우리 언니의 눈엔 안타까울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차라리 후련했다. 내게 공부도, 어떻게 살아야 한다도 강요하거나 가르치는 이는 없었기 때문이다.

각자 당장의 내일을 살아가야 할 몫을 다해야하기 때문에 내가 무얼 하든 큰 신경을 써주지 못했다. 그 자유가 좋았다. 다른 친구들은 갖지 못하는 나만의 자유를 찾고 싶었다.


그런 내게 꿈은 있었다.


남들보다 유독 눈에 띄게 잘하던 노래. 끼는 없었지만 노래방에서 마이크만 잡으면 모두가 놀라워 할 정도로 노래를 잘 했고 나도 그 순간엔 마치 모든 시간이 날 향해 있는 듯 내 세상이 된 것 같은 자유로움을 느꼈다.

그만큼 노래는 날 해방시켜주기도 하고 날 대단하게 만드는 무기이기도 했다. 한동안 가수를 꿈꿔볼까 하던 찰나에 집이 어려워지면서 내가 놓아버린 것 중 하나는 나의 꿈이다. 그래서 곧 잘 하던 공부든, 내가 좋아하던 노래든 뭐든 놓았다.


앞으로 뭘 하면서 살아야 할까?


아빠의 도박으로 이런 환경이 되었어도 누구 하나 아빠를 탓하지 않았다. 아니,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랬다. 각자의 마음속에 어떤 미움과 사랑이 있는지는 몰라도 나는 모두가 답답했다.

희생만 하는 우리 엄마도, 묵묵히 집을 위해 꿈을 두고 엄마를 돕는 우리 언니도, 다들 왜 희생만 하며 사는 걸까. 왜 당신들의 삶은 없는걸까.


그래서 난 내 삶을 살고 싶었다. 희생하면서 사는 건 우리 엄마시절의 여자들로 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의미가 있는 희생이거나 본인의 행복을 위한 희생이라면 모를까, 어린 내 눈엔 이해가 어려운 상황의 연속이였다.

그렇다고 막내인 내가 모든 걸 알 수 있게 속 시원하게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다. 왜냐, 난 막내니까. 그들에겐 한없이 어리고 사랑 받아야 하는 막내니까.


어쩌면 나 스스로 얼마든지 독립할 수 있다고 보여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나도 어른이라고, 꼭 당신의 도움 없이도 잘 살아갈 수 있다고.


내가 조금만 더 삶의 지혜를 깨달은 어른이였다면 그렇게 공부를 놓거나 술을 마셔보는 방황보다 더 현명한 선택을 했을텐데 그 때의 나는 어렸고,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을 해보는 게 어른이라 여겼다.


사실 이제서야 내가 그때 왜 그런 방황을 했는지 이해가 가지만, 그 시절 나도 나를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우리 가족 누구에게도 내가 왜 그러는지 설명보단 분노를 표출했다.

건들지 말아달라고, 그저 냅두라고. 모두가 내게 하는 말은 참견이였고 쓸데없는 걱정으로 느껴졌다. 사람은 참 겪어보면 안다. 그들의 마음을 이제야 이해한다. 얼마나 불안해보였을지 시간이 흐르고 난 뒤 후회해도 소용 없을 때 알게되는거다.


아무튼, 그런 시기를 보내며 막내의 기질인지 그냥 뻣대는 내 성격 때문이였는지 모르겠지만 워낙 한 가지를 오래 하지 못하고 흥미있는 것만 하던 내가 이렇게 불안한 환경을 맞닥뜨리니 모든 것이 재미 없었다.


이곳 저곳 어른 흉내를 낼 수 있는 곳을 물색하다 발견한 곳은 그 바.


난 그곳이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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