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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화성인 247>

★ 마지막 회 ★

by 윤철희 Mar 05. 2025

에밀리가 잠든 선실에서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에밀리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잣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니

잠꼬대를 하는 중이거나 앨리스를 만나는 중일 것이다.

이사칠은 앞으로 에밀리와 함께 할 날을 생각하면

지구의 많은 것들에 대한 그리움쯤은 너끈히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요, 관점을 바꾸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가는 길 험하고 도착한 뒤에도 어려움이 엄청나게 많겠지만

상황을 긍정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기로 한 겁니다.

왜, 관점이 바뀌면 깜깜한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빛줄기를 찾을 수 있다고 하잖아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한없이 쌓인 어둠을 헤치고 가는 게 아닙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온 우주를 눈부신 곳으로 만드는 무한한 빛줄기의 세례를 받으면서,

때로는 그것들에 떠밀리고 때로는 그것들을 거스르며 나아가는 거죠.


“인생이란 무엇일까요?

여러분, NASA가 우주로 보낸 보이저 우주선들이 있습니다.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저는 인간이 만든 우주선에 불과한 보이저 우주선들을 생각하면서 많은 용기를 얻습니다.

앞에 무엇이 있을지 알 길이 없는 심우주를 향해 두려움 없이 나아가는 게 인생이고,

그 길에서 간간이 마주치는 밝은 빛에 감동하고 환호하면서

그런 기쁨을 얻은 것에 감사해하는 게 인생이고,

누군가는 들을 거라는 실낱같은 희망에

실오라기처럼 가느다란 메시지를 출렁거리는 어둠의 바다로 발신하면서

그 메시지를 받은 누군가가 역시 실오라기처럼 가느다란 화답을 보내올 것이고

언젠가는 그 가느다란 실오라기를 붙잡는 데 성공해서는

메시지를 읽고 감격하게 될 거라고 기대하는 게 인생이라는 걸 깨달았으니까요.


“저는 보이저가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에 따라 충실히 임무를 수행하듯

지구에는 지구인에게 맡겨진 삶이 있고 화성에는 화성인 나름의 삶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저는, 우리는 화성에 도착하면 지구에 있는 분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로 충실하게 그 삶을 살 겁니다.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제작되는 포르노의 장점이 뭔지 아세요?

모든 작품이 다 해피엔딩이라는 겁니다.

우스운 얘기지만, 언젠가 포르노와 우리들 인생살이는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포르노의 설정과 전개는 다 제각각이만 종착지는 모두 똑같으니까요.

우리들 인생도 마찬가지잖습니까?

태어난 곳이나 자란 환경은 다 제각각이지만 종착역은 딱 한 군데잖아요.


“그런데 포르노와 달리 우리 인생은 아무리 행복한 인생이더라도 해피엔딩이 아니죠.

모든 인생의 끝에는 영원한 잠과 이별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장담하건대 저 이사칠이 화성에서 맞는 결말은 해피엔딩일 것입니다.

반드시 그렇게 만들 겁니다.

여러분도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주세요.

그리고 가끔씩은 저를 기억해주세요.

0.376G에 어울리도록 태어난 화성인이지만 1G에 적응하려 애썼던 이사칠이라는 인간이 있었다는 걸,

남들 눈에는 이상한 궤도를 도는 것 같았지만

자신의 궤도를 안정적으로 돌려고 노력했던 인간이 있었다는 걸 기억해주세요.”


당부의 말을 마치고 숨을 돌린 이사칠은 결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저는, 우리는 지구의 삶에 실패한 도망자로 화성에 가는 게 아닙니다.

정치적 망명을 하려고 화성에 가는 게 아닙니다.

혹시라도 그런 오해를 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런 이유로 우리를 안쓰러워하면서 눈물을 흘리지는 말아주세요.

눈물은 ‘이사칠 정신’에는 어울리지 않으니까요.

그래도 정 우리를 위해 눈물을 흘려야겠다는 분이 있다면, 좋습니다. 몇 방울 정도는 흘리셔도.

그렇지만 그러고 나서 곧바로 환히 웃을 거라고 약속해주세요.


“여러분, 꼭 알아주세요.

저는 앞으로 찾아올 지구인들을 위한 길을 닦는 개척자로서 화성에 가는 겁니다.

화성을 ‘제2의 지구’로, 그렇지만 지구하고는 다른 새로운 별로 개척하겠다고 굳게 결심한 개척자로서

가는 겁니다.


“그러니 저는 화성에 있는 낙원을 찾아가는 게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이 우주에서 낙원을 찾아 헤매는 건 바보들이나 하는 짓입니다.

낙원은 찾는 게 아닙니다. 직접 짓는 겁니다.

각자가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고 그 외의 것도 흘려서 짓는 겁니다.

제가 생각하는 낙원은 별 대단한 곳이 아닙니다.

내가 행복하게 살면서 행복하게 사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곳, 그런 곳이 바로 낙원입니다.

많은 분들이 엄청나게 많은 ‘이사칠 정신’을 등록해주셨는데요,

저보고 딱 하나만 남기라면 이 말을 남기겠습니다.

‘낙원은 찾는 게 아니라 이사칠 짓는 것이다.’

저는 이걸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을 때에야 깨달았습니다.

좀 더 일찍 깨달았으면 좋았겠죠.

그렇지만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건 깨달았다는 거니까요.


“여러분, 저는 화성에 낙원을 지을 겁니다.

두텁게 쌓인 외로움의 지층 위에 사랑이라는 탄탄한 기초를 다지고는 그 위에 낙원을 지을 겁니다.

척박한 화성 땅을 생명이 번창하는 기름진 곳으로 바꿔놓을 겁니다.

가끔씩은 화성의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파란 구슬 같은 지구를 보면서 지구를 그리워할 테지만,

인류의 지평을 넓히고 화성을 화성인의 삶의 터전으로 삼는 작업에 곧바로 매진할 겁니다.


“우리가 화성에서 생활할 거처는 여러분 눈에는 초라하고 허름해 보일 테지만

그곳을 보금자리로 삼은 우리의 삶은 결코 초라하지 않을 겁니다.

화성을 바삐 오가는 우리의 몸은 무척이나 가벼울 테지만 우리의 사랑은 태산처럼 묵직할 겁니다.

우리는 그렇게 낙원을 지을 겁니다.


“그러니 놀러 오세요.

여러분이 직접 오는 게 힘들 것 같다면 여러분의 후손이라도 보내세요.

우리가 세운 낙원을 보고 오라고요.”

격하게 말을 쏟아낸 이사칠은 한동안 숨을 고르고는 차분해진 몸과 마음으로 말을 이었다.

“여러분, 사는 게 고단하고 지쳤다면,

여러분에게 불끈 서게 할 힘이 필요하다면 이제부터는 하늘을 올려다보세요.

밤하늘이어도 좋고 별빛이 햇빛을 이겨내지 못하는 낮하늘이어도 좋습니다.

드넓은 하늘 어딘가에 있는 화성이라는 행성에서

화성인 이사칠이 지구인 여러분의 행복한 삶을 기원하며 지구를 바라보고 있을 테니까요.

운이 좋다면 여러분의 시선과 지구를 바라보는 제 시선이 마주칠 거고,

그렇게 여러분과 제가 하나로 이어지면

‘이사칠 능력’을 가능케 해주는 정기가 여러분에게 전해질 거고

여러분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불굴의 힘과 당당함을 얻게 될 겁니다.”


이사칠은 거침없는 말을 쏟아냈지만 카메라 앞에서는, 대중 앞에서는 할 수 없는 말들도 있었다.

그와 에밀리가 만들어갈 행복한 미래에 대한 말.

그와 에밀리는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라는 말.

혹시라도 에밀리가 원치 않는 춤을 추는 날이 오면,

영원토록 오지 않기를 바라는 그날이 잔인하게 두 사람을 찾아오면,

이사칠은 기이한 춤을 추는 그녀가 무안해하지 않도록 그녀를 꼭 껴안고는 함께 춤을 출 것이라는 말.

화성의 중력에 적응한 몸놀림으로

화성 하늘에 뜬 별들과 함께 자신들의 궤도를 따라 느린 걸음을 옮기면서

우아한 사랑의 춤을 출 거라는 말.

바람처럼 두 사람을 스치고 지나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빛들 덕분에

세상 누구보다도 눈부신 연인이 될 두 사람이

서로의 귀에 사랑을 속삭이고 세상을 다 얻은 사람처럼 환하게 웃을 거라는 말.


그간 작품을 위해서만 사용됐던 정액은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용도를 되찾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두 사람 사이에 자식이 생긴다면

그들 가족은 한 식탁에 앉아 각자에게 장수(長壽)와 만복(萬福)을 듬뿍듬뿍 가져다줄 은수저로

오순도순 한솥밥을 먹을 것이다.

그 꿈이 이제부터 맞을 힘든 세월 동안 그와 에밀리를 버티게 해줄 것이다.

결국 그거면 된 거다.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이사칠은 고유명사이자 부사(副詞)이자 이제는 사라진 존재가 될 이름을 큰소리로,

희망에 찬 목소리로 당당하게 외치면서

어느 때보다도 호방하고 우렁찬 몸짓과 목소리로 고별 방송을 마무리했다.

“우주 진출을 꿈꾸고 시도하는 분들께 말씀드립니다.

우리가 앞서 가겠습니다. 우리의 발자취를 참고하세요, 이사칠.

지구에서건 화성에서건 우주의 다른 어디에서건 모두들 행복하게 살아갑시다, 이사칠.

모두들 자신만의 낙원을 지읍시다, 이사칠.”


                                         - 끝 -


"그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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