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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내 최애 음식 한우

by 데이지

나의 최애 음식은 한우다.

예전엔 고기를 먹는다고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좋아하고 즐겨 먹었다.

지금은 4인 가족으로 각자가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이 제각각이어서 외식 한 번 하려면 메뉴를 정하는 것도 쉽지 않다. 각자 최애 음식과 때에 따라 먹고 싶은 음식이 다양한 이유다.

봄에는 주꾸미 샤부샤부, 꽃게찜, 새조개 샤브샤브, 가을에는 전어와 대하소금구이, 겨울에는 홍가리비, 석화 등 계절 따라먹어야 하는 음식은 꼭 챙겨 먹는다. 그만큼 먹는 것에 진심인 가족이다.


언제부터인지 방송에서 야식을 먹는 먹방 프로그램과 요리하는 남자를 요섹남이라며 셰프들이 요리하는 프로그램 편성이 많아졌다. 그날도 저녁 설거지를 끝내고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 요리나 맛집을 찾아 음식을 먹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숯불에 한우를 구워 먹는 방송이 나왔다. ++ 한우 등심을 두껍게 썰어서 앞뒤로 벌집 모양 칼집을 내어 구워 먹는데, 아는 맛이라 더 먹고 싶어 보는 내내 진심 힘들었다. 아마 영업시간이 끝나지만 않았어도 당장 정육점이나 마트로 달려갔을 것이다. 그렇게 군침만 삼키다 먹지 못한 아쉬움에 그날은 잠까지 설쳤다.


다음날 고등학생인 작은 딸에게 과일 도시락을 챙겨주고 집안을 대충 정리한 뒤 마트로 달려갔다. 어젯밤 구워 먹던 한우 등심 생각이 잊히지가 않아서였다. 큰 딸에게도 일찍 들어오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야채를 사고 늘 다니던 정육점에 들러 한우 등심 ++등급을 두툼하게 썰어 달라고 부탁해서 사 왔다. 그리고 종일 기다려 저녁 급식시간에 작은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딸 오늘 야간자습 끝나고 학원 가지 말고 집에 와?"

"왜 엄마!"

"응, 너 오면 한우 구워 먹으려고."

"안 돼! 오늘은 꼭 가야 해 다음에 먹어, 아니면 먼저 먹어."

"엄마 한우 먹고 싶어서 사 왔단 말이야. 그럼 학원 끝나고 바로 와"

"응, 알았어 엄마."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남편에게 한우 등심을 앞뒤로 어슷하게 칼집을 내달라고 부탁을 했다. 당연히 어제 보았던 프로그램에서 처럼 고기에 칼집이 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남편이 고기를 잘 굽기도 하고, 칼집 내는 방법을 잘 설명했기에 철석같이 믿었다.

고기 먹을 생각에 기분 좋게 다른 일을 하고 주방에 가 보니 칼집이 끝났다며 남편이 들고 온 한우는 처절하게 흐물거리는 깍두기가 되어 있었다. 겨우 동아줄에 매달리듯 걸려 있었다.

이럴 수가!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순간 착하디 착한 내가 큰 딸이 놀라 쫓아 나올 정도로 화를 내고 있었다. 상상을 넘는 실망감에 지금 생각해도 화가 치밀어 오를 정도다. 기대하던 한우의 모습은 어디로 가고 그 비싸고 맛있는 한우가 이토록 처절할 수 있다니.

잘라진 고기를 붙일 수도 없고 숯불에 한 번씩 뒤집으며 육즙 가득한 고기를 원했건만 허망하게 깍두기가 된 한우라니 구워 먹는 내내 잔소리를 했다. 내가 왜 그렇게 두껍게 썬 한우 등심을 사 왔겠느냐, 어떻게 앞뒤로 칼집을 내달라고 했더니 깍두기를 만들 수가 있느냐, 폭풍 잔소리를 했던 기억이 난다.

밤 12시가 다 되어 딸이 왔고 잔소리와 함께 고기를 구워 먹었다. 특별히 사장님께 부탁해 맛있는 부위로 두툼하게 썰어와서인지 깍두기여도 맛은 있었다.

고기를 다루는 장인이 낸 칼집 한우를 보고 먹고 싶어 산 ++ 한우는 그렇게 아쉬움과 함께 깍두기가 되어 우리 뱃속으로 사라졌다.

난 포기할 수 없어서 며칠 뒤 다시 고기를 샀다. 그리고 남편에게 방송에서 본 대로 칼집을 내라고 설명하며 옆에서 한우를 사수했다. 그런 덕분에 나름 비슷한 벌집 모양이 나왔고, 며칠 전 방송에서 느꼈던 맛을 음미하며 한우를 구워 먹을 수 있었다. 흐뭇함에 고기 굽는 남편 입에도 한 점씩 넣어주며 잘했다고 칭찬도 잊지 않았다. 역시 한우는 특히 ++등심은 언제나 옳았다.

그 후로 한우 등심을 구워 먹을 때면 깍두기 한우 얘기를 하면서 한 번씩 웃곤 한다. 그리고 딸들은 그날 엄마가 아빠에게 너무 화를 냈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지금 생각하니 남편은 고기를 다루는 장인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간과한 내 잘못이 컸구나 싶다.

미안해요! 그래도 그날의 고기는 내가 먹었던 한우 중에 가장 아쉬웠던 한우 ++등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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