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죽을 쑤어 먹는 노동지가 전하는 할머니와 손녀의 일상
우리 집은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큰아버지가 분가를 하시면서 막내인 아버지가 조부모님과 살게 되셨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둘째 오빠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고 난 사진으로만 뵈었습니다.
어머니 말씀으로 할아버지는 괴짜셨다고 합니다. 돼지가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귀를 뚫어 끈으로 묶어 끌고 다니셨고, 농사 때 사용하는 농기구를 개조해 써 보라며 어머니 아버지께 주셨는데 무겁고 힘이 더 들었다고도 하셨습니다. 또 쌀을 씻을 때 쌀알이 물에 쓸려 버려진다고 쌀 씻는 양푼 위쪽에 구멍을 내어 물이 빠져나가게도 만드셨고, 소화를 잘 못 시키는 당신을 위해 찹쌀밥을 따로 짓는 며느리에게 가마솥 밥을 지을 때 양푼에 구멍을 내어 찹쌀을 담아 한 번에 두 종류의 밥을 할 수 있도록 하셨답니다. 듣고 있다 보면 좀 엉뚱하신 할아버지가 무척이나 궁금해집니다.
할머니는 농사일로 바쁜 어머니를 대신해 우리 형제들을 돌보며 살아오셨습니다. 아침밥을 준비하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농사일을 나가시면 할머니가 집안일을 도우시면서 지내셨던 것 같습니다.
할머니는 집안 큰일과 농사일까지 하시는 어머니가 고맙기도 했지만, 마냥 편하지 만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고부갈등이 우리 집에도 있었겠지요. 어려서 잘은 몰라도 오묘한 감정들이 할머니와 어머니 사이에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조상님 제사가 다가오면 할머니는 어머니가 시장을 언제 봐 오는지를 직접 물어보지 않으시고 나에게 슬쩍 시장은 언제 다녀오는지 물어보시곤 했습니다. 할머니는 내게 뭐든지 해주시는 반면 어머니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매개체 역할을 시키시 곤 하셨습니다. 가끔은 할머니와 서로 원하는 것을 주고받기도 했습니다. 가령 할머니가 궁금해하시는 일들이 있으면 어머니의 동태를 파악해 알려드렸고 대신 먹고 싶은 과자를 받는 일 말입니다.
해마다 동짓날이 돌아오면 할머니는 달력의 작은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다고 나를 찾습니다.
"오늘이 음력으로 며칠이냐?"
"할머니가 보면 되는데. 왜?"
"동짓날이 다가오는데 애동지인지 노동지인지 봐야지?"
"잠깐만, 오늘이 음력으로 11월 10일이야 할머니."
"그럼, 올해 동지는 노동지라 팥죽을 쑤어 먹어야 하겠네."
"할머니가 팥죽을 쑬 거야?"
"애미가 쒀야지."
"그럼 어머니가 알아서 팥죽을 쑤겠지! 할머니."
"그건 그렇지!"
하신다. 어머니가 알아서 하실 텐데도 여전히 날짜를 따져가며 신경을 쓰십니다.
"그런데 할머니 노동지가 뭐야?"
"동짓날이 음력으로 스무하루 날이 지나서 들면 노동지라 팥죽을 쑤어 먹어야 내년에 농사도 잘 되고 식구들이 건강하게 잘 지낼 수 있는 거야."
할머니 말씀으로는 매년 12월 22일 동짓날을 기준으로 음력으로 11월 01일에서 10일까지는 애동지라 칭하고, 11월 11일에서 20일까지는 중동지, 11월 21일부터 30일까지는 노동지라고 하셨습니다.
팥죽은 애동지 중동지 노동지 중에 노동지에만 쑤어 먹는 거라고도 하셨습니다.
"아 그렇구나! 할머닌 어떻게 알아?"
"옛날 사람이니까 알지!"
"옛날 사람은 다 아는 거야?"
"그렇지. 나도 우리 어머니한테 배운 거지."
"할머니 어머니한테 동짓날 팥죽 쑤어 먹어야 한다고 말해 줄까?"
"그래라, 미리 알아야 준비를 하지!"
안방 문을 열고 나가 어머니를 찾았습니다. 할머니는 내가 어머니에게 동짓날 팥죽을 쑤어 먹는 노동지라고 말할 때까지 계속 내게 팥죽을 쑤어 먹어야 하는 노동지라고 말할게 뻔했습니다. 어머니가 알아서 하겠거니 하시면서도 매번 나를 통해 전달 하셔야 안심을 하십니다. 그런 할머니와 옥신각신도 해 봤지만, 결국은 어머니에게 전달해야만 끝이 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때는 몰랐던 할머니들의 특징 같습니다. 딱히 할 일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매일매일이 똑같은 생활속 지루함에서 오는 집착 같달까 별일 아닌 것에 집중하십니다. 그런 할머니의 마음을 알기에 필요에 따라 적절히 응대하며 나름 사회성을 길렀습니다.
"할머니, 어머니한테 말했더니 알고 있데. 그래서 팥죽 쑤어 먹을 거래 이제 됐지!"
내 말에 할머니는 흡족해하시며 대답하셨습니다.
"그래."
"이제 된 거지! 그럼 나 배 좀 살살 쓸어줘. 그 말도 하면서."
할머니의 고민거리를 해결해 줬으니 기회는 이때다 싶어 졸랐습니다. 심심하기도 하고 할머니가 배를 쓸어주면 기분이 좋아질뿐더러 잠도 잘 옵니다.
"배도 안 아프면서 왜 해?"
"그래도 해줘! 좋단 말이야."
"할머니 손은 약손, 송이 배는 똥배다 쑥 내려가라."
할머니는 연신 같은 말을 반복하시며 내 배를 살살 쓸어 주셨습니다.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 할머니가 배를 쓸어주시면 나른해집니다. 나지막한 할머니의 소리를 들으며 어느새 잠이 들었고, 잠결에 걷어 찬 이불을 덮어주시는 할머니의 손길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늘 옆에 있어 외롭지 않은 할머니와 손녀의 소소한 일상입니다.
하루 종일 방에만 계셨던 할머니는 손녀가 벗이었고 손녀의 든든한 지원자였습니다.
며칠 뒤 동짓날이 되어 어머니는 찹쌀가루를 익반죽 해서 새알심을 빚고 팥을 삶아 팥죽을 쑤셨습니다. 할머니는 새알심이 듬뿍 든 팥죽 한 그릇을 다 드셨습니다. 할머니가 팥죽을 드시고 싶으셔서 노동지라 팥죽을 쑤어먹어야 한다고 그런 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