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쳐 쓸 수 없으면 바꿔야 해요
입춘 한파로 며칠째 눈이 내리고 강풍이 불고 있다.
추워진 날씨로 난방을 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보일러에 에러가 발생했다. 한밤중이라 AS를 접수할 수 없어서 전원코드를 뽑아다가 연결했더니 다행히 돌아간다. 괜찮아진 거겠지 하면서 며칠이 지났다. 난방과 온수를 함께 쓸 때나 서재 방 난방을 할 때면 다시 보일러에 에러가 뜬다. 매번 전원 코드를 뽑았다가 연결하여 쓰곤 했는데 에러가 발생하는 빈도가 점점 늘고 있다. 불편한 건 고사하고 에러를 묵인하다 더 큰 고장이 생길 것 같아 AS 접수를 하기로 했다.
난방을 할 때 에러가 발생하니 보일러 회사에 전화를 했다. 상담원이 에러 코드와 증상을 묻는다. 에러 코드는 E69, 서재 방과 다른 방 난방을 하면 에어가 발생하고 온수만 사용하면 에러가 뜨지 않는다고 했다.
상담원은 온수가 가동되면 보일러의 문제는 아닌 것 같고, 에러코드가 온도 과열로 표시되는 것으로 온도조절기 쪽으로 문의하라고 한다. 그렇구나 싶어서 온도 조절기 회사에 전화를 하고 증상과 에러 코드를 다시 말해줬다. 이번에도 자기 쪽의 문제가 아니고 분배기의 문제라고 한다.
전화를 끊고 나서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서로 아니라고만 하고 답답해 관리실에 문의를 했다.
아파트 시공당시 보일러와 분배기 홈네트워크를 각각 다른 업체가 공사를 했고, AS도 각각 업체로 연락을 해야 한다고 한다. 결국은 보일러가 고장이 나면 온도조절기, 분배기, 보일러 각각 다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분배기 시공 업체에 전화를 하고 다시 증상과 에러코드를 말하며, 보일러 회사, 홈네트워크와 통화한 내용까지 전달하고 나서야 분배기 조절기가 고장 난 것 같다고 방문 일정을 잡았다.
드디어 업체 세 곳과 통화한 후에야 AS 접수를 마쳤다. 고장 난 곳을 수리한 것도 아니고 AS 접수만 한 것뿐인데 똑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하며 응대했더니 기진맥진이다.
저녁에 퇴근한 남편에게 AS 접수를 했다고 말하며 통화한 과정들이 힘들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했지만, 남편은 보일러 AS 접수가 언제 오는지만 묻는다.
야속한 남편, 내편 아닌 남의 편 같은 남편님 같으니라고!
다음날 분배기 AS 사장님이 오셨다. 아파트 시공을 직접 하셨다는 사장님은 난방을 가동하면서 상태를 살피시더니 과열로 인한 에러는 맞는데 분배기에는 이상이 없고, 가스보일러에 이상이 있다고 바로 가스보일러 AS 기사와 통화해 상태를 말하고는 접수까지 해 주셨다. 분명 보일러 업체 상담원은 보일러 문제가 아니라고 했는데, 분배기 사장님은 보일러 쪽 문제라고 한다. 보일러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누구 말이 맞는지 혼란스러웠다.
분배기에는 이상 없고 보일러의 삼방 모터 즉 난방과 온수를 전환해 주는 모터에 이상이 생겨 에러가 발생하는 것 같아 보일러 AS 기사에게 상태를 설명해 뒀다고 다시 설명을 해 주신다. 사장님이 증상을 확인 후 진단하고 다른 과로 협진을 요청해 주는 의사처럼 일처리를 해 주시니 한 시름 놓을 수 있었다.
오후에 보일러 AS 기사님이 방문했고 증상을 들었다고 하시며 가스보일러 커버를 열고 내부를 살폈다. 안방, 거실, 에러가 잘 나는 서재방, 온수까지 확인하고 설명을 했다.
가스보일러 수명은 7~8년인데 지금 사용하는 보일러는 12년 차에 들어서 노후 때문에 에러가 발생하는 것이고, 그중에 연소실이 사람으로 말하면 심장인데 연소가 잘 되지 않아 펌프와 삼방 모터에 무리가 지속되면서 전체적으로 상태가 나쁘다고 한다. 펌프, 삼방 모터, 연소실을 교체하더라도 다른 부속들도 노후로 잔고장이 생길 수 있다며 수리보다는 새 제품으로 교체하는 것을 추천한다고 전반적인 상태를 설명해 줬다. 또 몫 돈이 들어가는 일이라 기사님도 상의하고 연락을 달라고 하신다.
오래 사용해서 고쳐 쓴다고 해도 고장이 잦을 거라는 말에 새 제품으로 교체해야 할 것 같다.
고장도 닮아가는지 주방 냉장고, 건조기가 연달아 고장이 나서 냉장고는 수리를 했는데도 가동이 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새것으로 교체를 했고, 다행히 건조기는 수리해서 잘 사용하고 있다.
어떤 물건이든 일정기간 사용하면 고장이 나기 마련이고 수리가 가능하다면 고쳐 쓰고, 이번처럼 수리해도 효과가 미흡하거나 수리가 안된다면 새로운 것으로 교체를 해야 한다. 생활의 편리를 위해 사용하는 가전제품은 더욱 그렇다. 오래 손때가 묻어 익숙하더라도 사용할 수 없으면 버릴 수밖에 없다. 간혹 추억이 있거나 특별한 애착이 있는 제품들은 다르다. 나에겐 첫 아르바이트를 해서 구매한 aiwa 카세트가 그랬다. 몇십 년을 버리지 못해 가지고 있기도 했다.
어떤 물건은 오랫동안 사용하고 교체하면서 생물처럼 느꼈던 적도 있었다. 3년 동안 22만 킬로를 넘게 탄 자동차를 보내면서 큰 사고 없이 열심히 달려준 자동차에게 고생했고 고마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었다. 때로는 물건이라도 감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 아닐까?
가스보일러를 교체하기로 한 날이다. 보일러실을 대충 정리하고 아침밥도 일찍 먹고 기다렸다.
AS 기사님이 오셔서 사용하던 보일러를 해체하고 새 제품으로 교체 작업을 시작하셨다. 고장 난 가전제품을 고치는 것이나 보일러를 수리하고 교체하는 과정들을 지켜보면 사람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만드는 과정이야 볼 수 없었으니 대단한 기술력이구나 하지만, 제품을 수리하려고 내부를 열어 부속을 갈고 다시 가동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을 지켜보면 인간의 능력이란 무한하다는 것을 더 느끼게 된다.
작업은 두 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기존 제품을 해체해 뜯어 내고 새 제품을 달고 연통도 새것으로 교체하고 일산화탄소 센서도 달아 주셨다. 뒷마무리도 깔끔하게 정리까지 해 주시곤 사용설명을 간단히 해 주셨다.
이제 난방을 하면서 에러 걱정 없이 사용하면 된다.
며칠간의 불편하고 멈춰 버릴까 봐 걱정했던 고민이 사라졌다. 가동하면서 쿵쾅거리던 소리도 조용해졌다. 어렵게 서비스를 받느라 여러 곳에 전화하느라 번거롭기는 했지만, 그 덕분에 올봄은 따뜻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 꽃샘추위가 닥쳐도 문제없겠다.
인생도 기계처럼 가끔씩은 점검하고 뒤돌아보며 살아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