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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화려함에 가려진 동백의 애환

by 데이지

성인이 된 두 딸이 있다. 딸들은 얼굴 생김새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다. 제주로 이주하면서 두 딸들이 집에 다니러 올 때도 차이가 난다. 큰딸은 오기 전에 미리 가고 싶은 곳과 먹고 싶은 것, 예쁜 카페들을 찾아서 여행자처럼 오지만, 작은딸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내려와선 며칠을 집에만 있다 간다. 어디 가고 싶은 곳이 있냐고 물으면 집에 온 거지 여행지에 온 것이 아니라고 한다. 제주도에 집이 있을 뿐이라나 뭐라나, 한 배에서 나왔어도 너무 다르다.


이번 연휴에도 큰딸은 가고 싶은 곳과 먹고 싶은 것들을 찾아왔다. 동선까지 고려해 맛집과 뷰가 예쁜 카페, 한창 물오른 동백꽃도 잊지 않았다. 공항에서 만나 동백꽃을 보러 서귀포로 달렸다. 지금 제주는 굳이 찾지 않아도 어디서든 동백꽃을 볼 수 있다. 집 주변은 물론이고 발 닿는 곳이면 활짝 핀 동백꽃을 만날 수 있다.

딸은 동백꽃을 보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생사진을 찍고 싶어 했고,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00이네 동백 꽃밭을 찾아왔다. 지금은 알려지지 않은 신상 제주 동백 명소로 홍보를 위해 무료 개방 중이란다. 그리고 이곳은 동쪽에 위치한 관계로 오전에 방문해야 예쁜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도 했다. 오후 1시 전에 사진을 찍어야 하니 점심도 미루고 방문한 덕에 아주 많이 그리고 원하는 사진을 얻었다. 먼저 다녀간 사람들의 정보로 동백 꽃밭에서 우리 가족은 행복한 한 때를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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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마주한 동백꽃은 예쁘기만 한 것에 그치지 않고 제주만의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붉은 동백은 제주 4·3 사건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꽃이다. 동백꽃은 4·3 사건 희생자들의 영혼이 붉은 꽃처럼 차가운 땅으로 소리 없이 쓰러져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꽃송이 그대로 툭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애처로운 마음이 들곤 했다. 동백은 화려한 만큼 아픔도 품고 있었다.


올레길을 걷다 보면 생활 속 동백은 마을 골목에서도 볼 수 있었다. 동백나무 열매를 주우시는 할머니는 허리가 아프시다면서도 줍고 또 주우시길래 어디에 쓰시려고 힘들게 주우시냐고 여쭤봤다. 할머니 하시는 말씀이 동백기름을 짠다고 하신다. 어디에 쓰시려고 기름을 짜실까요 했더니, 머리에도 바르고 갈라진 손에도 바르신다고 한다.

옛날에는 기름을 먹기도 했고, 호롱불에 쓰기도 했으며, 아프면 약으로 사용도 했다는 할머니의 말씀에 변변한 약도 없던 시절 동백은 그냥 꽃에 그치지 않은 의미가 있었다.

동백나무는 꽃, 잎, 열매 모두 약효성분들이 많아 버릴 것이 없다고 한다. 동백꽃은 폴리페놀이 충부하고 항산화 효능이 좋아 피부를 보호하는데 도움이 된다. 힘들게 동백나무 열매를 주우시는 할머니 곁에서 잠시나마 같이 주워드리며 거칠고 갈라진 할머니의 손이 고아지기를 바랐다.


군락을 이루며 제주를 지키는 동백은 붉은색, 분홍색, 흰색 등 다양하고 산책길 귤밭과 함께였다. 동네 산책 길에 만난 동백은 지나가는 이의 눈길을 낚아채 번번이 황홀경에 빠지게 만든다. 나중에 알았지만 귤밭에 동백나무가 많은 이유는 거친 바람을 막기 위한 방풍림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저 예쁘다고 웃고 즐겼던 시간 속에 오랜 세월 제주인의 삶과 함께한 동백의 애환이 숨어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곁에 있었던 동백은 이웃이자 동무인 것이다.

'누구보다 그대를 사랑한다'라는 붉은 동백의 꽃말처럼 제주의 삶을 맘껏 사랑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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