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을 하다가 신호에 걸려 잠시 차를 정차하고 무심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눈에 열매가 붉게 피어난 먼나무 가로수가 들어왔다. 제주에서 가을을 느낄 수 있는 또 하나의 풍경이다. 여름이 시작되면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 가을이 되면 초록이던 송이송이구슬 열매들이 빨갛게 익는다. 귤나무처럼 겨울 내내 초록잎을 가지고 있는 먼나무는 열매를 더 빨갛게 돋보이게 한다.
이주하고 첫겨울 남편이 운전 중에처음으로 길가의 먼나무와 홍가시나무를 보고 와서는, 나무에 빨갛게 꽃이 활짝 폈다며 같이 드라이브를 하자고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는 이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몰랐는데 그 도로가 연북로였다. 꽃구경을 갈 생각에 신이 나서 나섰는데, 남편이 예쁘다고 한 빨간 꽃나무는 먼나무와 홍가시나무였고, 먼나무의 빨간 열매와 홍가시나무의 빨간 잎을 꽃으로 착각했던 거였다. 실망감에 꽃이 어디 있냐고 타박은 했어도 누가 봐도 먼발치에서 보면 먼나무와 홍가시나무에 붉은 꽃이 핀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잘 모를 땐 집 앞에 두고도 보이지 않던 먼나무가 알고 나니 곳곳에서 보였다.
처음 먼나무를 봤을 때 신기한 마음에 무슨 나무이길래 한겨울 열매가 있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네이버에 열매와 잎을 찍어서 검색하며 찾은 나무가 감탕나무였다. 감탕나무인가? 비슷해서 감탕나무인 줄로만 알았었다. 그런 줄 알고 지내다가 남편의 지인과 한 차를 타고 서귀포를 넘어가게 되었다. 뒷좌석에 앉아 무심코 창밖을 보는데 빨간 먼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무슨 나무였더라 몰라서 네이버 검색도 해봤었는데 곰곰이 생각을 해도 나무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다시 찾아보기도 귀찮고 앞 좌석에 앉은 지인에게 무심코 물었다.
"저 길가에 나무가 무슨 나무예요?"
"아, 먼나무요."
뭔 나무냐고 되묻는 줄 알고 다시 설명을 했다.
"아 저기 가로수나무 말이에요, 빨간 열매단린 나무요."
"그래요. 먼나무요."
무엇을 물어보는지 못 알아듣고 되묻는 것인지 아니면 장난을 치시는 건지 난감했지만 다시 설명을 해줬다.
"저기 가로수 택시 옆 빨간 열매나무 이름을물어보는 거예요."
"그래요. 먼나무! 몇 번을 말해요."
답답해 죽겠다는 표정이다. 순간 오히려 내가 더 답답한데 적반하장이다싶었는데 앞 좌석에서 고개를 내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저 가로수가 무슨 나무냐고 물었잖아요?"
"네. 맞아요."
"저 나무 이름이 먼나무라고요! 뭔 나무냐고 되묻는 것이 아니고요."
"아, 정말요! 저 나무가 먼나무라고요! 계속 뭔 나무냐고 장난치시는 줄 알았어요."
"그래요. 이제 이해하셨네."
운전하던 남편도 지인도 한바탕 웃었다.
처음부터 '저 나무 이름은 먼나무라고 해요'라고 했으면 될 텐데 그냥 먼나무라고만 대답을 하니 뭔 나무냐고 되묻는 줄로 안 것이다. 하필이면 나무이름이 먼나무라니 뭔 나무라고 오해하기 딱 좋았다.
길가의 먼나무를 보면 그때 생각이 나 나도 모르게 웃는다. 지금은 딸들이나 지인들에게 그때의 이야기를 하며 웃지만 한쪽은 못 알아들은 줄 알고 계속 설명을 하고, 또 다른 쪽은 대답을 해줘도 못 알아듣고 재차 묻는 일이 반복되었으니 초면에 얼마나 답답하고 이상한 사람으로보였겠는가 싶다.
지금처럼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면 눈에 들어오는 먼나무를 보면서 그때 생각이 나서 혼자 히죽히죽 웃게 된다. 신호를 받아 출발하면서 올 해는 유난히 길었던 폭염으로 가을을 알리는 먼나무가 더욱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