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기억하는 일
저녁 잠자리에 들면 다음날 해야 할 일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해도, 한 두 가지는 꼭 빼먹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해야 할 일들을 머릿속에 정리하고, 몇 가지인지 가지수로 기억합니다. 그렇게 하면 해야 할 일들을 덜 잊게 되더군요.
화분 분갈이를 해줘야 하고, 속옷과 셔츠를 빨아 셔츠는 다림질해야 하고, 병원 예약을 확인해야 하고, 문화센터 갔다 오는 길에 아침에 먹을 과일을 사 와야 합니다. 정리하고 나니 해야 할 일이 네 가지입니다. 쉽게 4를 기억하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어젯밤에 생각한 오늘 해야 할 일이 네 가지였습니다.
다시 세분화해서 할 일이 뭔지 기억을 더듬었습니다. 화분 분갈이, 세탁과 다림질, 병원예약, 과일사기입니다.
우선 화분 분갈이를 하기로 했습니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거실에 있는 화분을 쳐다보며 어떤 순서로 분갈이를 할지 순서와 화분에 번호도 매겼습니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간단히 몸을 풀었습니다. 거실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 보면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절입니다. 또 나이가 들어가면서 무슨 일이든 시작하기 전에 몸을 풀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몸이 먼저 알고 있습니다.
몸을 풀었으니 슬슬 준비를 합니다. 거실 바닥에 신문지를 넓고 두껍게 깔아주고, 화분에 있던 흙을 버릴 비닐봉지와 뿌리를 잘라 담을 쓰레기봉투를 준비합니다. 그리고 창고에 있던 분갈이 흙을 가져왔습니다. 화분을 분갈이할 순번대로 나열하면 모든 준비가 끝납니다.
자 시작해 볼까요?
해마다 분갈이할 때면 남편이 옆에서 도와주었지만, 이번엔 혼자여서 필요한 것들을 챙겨 놓고 시작해야 중간에 왔다 갔다 하는 번거로운 일들을 줄일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꼼꼼한 체크는 필수입니다.
첫 번째 분갈이 화분은 홍콩야자입니다.
화분 위에 덮었던 마사토는 다시 사용해야 하니까 따로 덜어내고, 깔아 놓은 신문지에 화분을 뒤집어 흙을 쏟아냅니다.
한 손으로 나무줄기를 잡고 다른 손으로 잔뿌리와 엉켜져 있는 뿌리를 정리합니다.
화분에서 나온 흙은 비닐봉지에 담고, 비어진 화분은 구멍을 막고 스티로폼으로 공간을 채워줍니다. 그래야 화분이 무겁지 않습니다. 스티로폼 위에 새 분갈이토를 화분의 반 정도까지 채우고 뿌리를 정리한 홍콩야자를 넣어줍니다.
그 위에 분갈이토를 채워주며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중심을 잘 잡아주면 됩니다.
화분 위까지 흙을 채우고 살짝 눌러주며 따로 꺼내 놓았던 마사토를 덮어주면 홍콩야자 분갈이는 끝이 납니다.
새 흙에 수분이 있어서 물은 내일 주어도 될 것 같습니다.
첫 번째 화분 분갈이가 끝이 나니 커피 한 잔이 간절합니다. 아마 남편이 있었다면 부탁했겠지만, 일어났다 앉았다 하는 것이 번거로워 끝날 때까지 참기로 합니다.
두 번째 분갈이 화분은 목향나무입니다. 목향나무도 같은 방법으로 분갈이를 합니다. 제주에 오던 해에 꽃을 본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다음은 뱅갈 고무나무 3그루와 안시리움 하나, 키우면 부자가 된다는 부자난 2개, 다육 식물인 염좌까지 분갈이를 하면 됩니다.
두 시간에 걸쳐 생각한 순서대로 분갈이를 끝냈습니다.
바닥에 오래 앉아 있었더니 다리가 저려오기 시작합니다. 분갈이를 끝낸 화분을 제자리에 놓고 버려야 할 흙을 모아 정리하고, 잘라낸 뿌리와 쓰레기도 정리합니다. 깔았던 신문지도 정리하고 나면 바닥은 청소기를 돌려 마무리합니다.
새 흙으로 이사를 했으니 올 한 해도 잘 자라겠지요. 혹시 꽃이라도 피워 준다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입니다. 분갈이를 끝낸 화분 앞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잠시 쉬어갑니다. 굳었던 몸도 펴 봅니다.
해야 할 일중 하나를 끝냈으니, 세 가지가 남았습니다. 나머지도 잊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가짓수로 기억하니 별 탈 없이 마무기가 됩니다.
집안일은 매일매일 해야 하는 일, 주기적으로 해야 하는 빨래나 청소, 매달 해야 하는 이불빨래, 계절 따라 해야 하는 일, 연중행사로 해야 하는 일 등 사는 내내 많습니다. 한다고 해도 표시도 잘 나지 않고, 그렇다고 미루거나 안 하면 불편하고 금세 표시가 나는 참 성가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