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잎 날리는 어머니 쑥개떡
봄이 오면 나무에 파릇파릇 어린잎이 기지개를 켜고, 성질 급한 꽃들은 앞다투어 망울을 터트리고, 들에는 냉이, 달래, 씀바귀, 쑥이 지천입니다. 상상만으로도 설레는 이곳이 나고 자란 고향의 봄입니다.
두꺼웠던 옷들을 벗어던지고, 나른해지는 봄볕에 눈은 저절로 감기기만 합니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제 손에 떡 하나를 쥐어 주시곤 하셨습니다.
봄이면 먹었던 쑥개떡입니다. 앙꼬도 없이 쑥만 넣어 아무렇게나 동글 납작하게 빚은 것이, 씹으면 씹을수록 쑥향이 향긋합니다.
벚꽃 잎이 날리면 그 맛이 생각나 친정 나들이를 합니다.
딸들도 닮아가는지 봄이면 쑥개떡이 먹고 싶어 외할머니댁에 언제 가는지를 묻습니다.
농사일이 바쁜 농번기가 되기 전에, 어머니와 쑥을 뜯어 쑥개떡을 만들어 먹곤 했습니다. 때를 놓치면 쑥개떡은 일 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엄마, 나 쑥개떡 먹고 싶어!"
"그게 뭐 별거라고, 먹고 싶으면 한 번 다녀가."
"엄마, 쑥은 내가 뜯을게요."
어머니와 통화를 하고 딸들과 가는 친정길에 마음은 달려갑니다. 딸들도 덩달아 신이 났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짐을 대충 집안에 들여놓고 칼과 바구니를 챙겨 들고 어머니를 찾아 밭으로 갑니다. 아버지께 물으면 쉽게 알 수는 있지만, 어머니를 힘들게 한다는 핀잔은 덤입니다.
어머니는 기다리지 않고 벌써 쑥을 뜯으러 나가셨습니다. 딸들과 어머니를 찾으며 집 앞, 뒤 밭에 가봅니다.
동네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다가 집 앞 학교 운동장에서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어렸을 때 뛰어놀던 넓은 학교 운동장이 폐교가 되면서 쑥밭이 되어 있습니다.
어머니는 아침부터 쑥을 뜯으셨는지 바구니에 한가득입니다. 딸들은 삐걱거리는 운동장 놀이기구를 보자 뛰어갑니다.
"엄마 쑥은 내가 뜯는다고 했잖아! 그래서 서둘러 왔는데."
"오늘 가야잖아. 얼른 뜯어서 삶아야 방앗간에 다녀오지."
"그건 그렇지만, 엄마 힘들잖어."
"이깟 것 힘들긴 뭐가 힘들어!"
어머니가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두세 시간을 쪼그리고 앉아서 쑥을 뜯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막내딸이 쑥개떡을 먹고 싶다는 말에 두말없이 힘드셔도 쑥을 뜯으십니다.
동네에 아이들이 없으니 학교 운동장은 푸릇한 어린 쑥 천지입니다.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도 하고, 봄이 몇 날 며칠 키운 정원 같기도 합니다.
어머니와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한 시간 넘게 쑥을 뜯었습니다. 이름 모를 풀을 자꾸 뜯어와서는 먹는 거냐고 바구니에 담던 아이처럼요.
쑥을 뜯고 와서도 잠시 쉴 틈 없이 서둘러 쑥을 삶아야 합니다.
순하디 순한 쑥은 물에 몇 번 씻기만 하면 됩니다. 어머니는 마당에 있는 커다란 가마솥에 물을 끓이시고, 깨끗하게 씻은 쑥을 물이 끓으면 데쳐서 찬물에 담가놓으십니다. 찬물에 담가놔야 쑥의 쓴맛이 빠지니까요.
그사이 어머니는 아침부터 불려 놓았던 쌀을 채반에 건저 놓으십니다.
이제 한 시간쯤 지난 후에 쑥을 건져 쌀과 함께 방앗간에 가져가는 일만 남았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거실에 딸들과 누워서 어머니가 쪄 오신 백설기를 먹으며 아이가 됩니다.
딸은 딸들이 말을 안 듣는다는 하소연, 딸의 딸들은 엄마가 먹기 싫은 것을 자꾸 먹으라고 한다는 하소연. 서로 자기편이 돼 달라고 아우성입니다. 딸의 딸들 하소연까지 들어줘야 하는 어머니는 자식들이 오면 잠시도 쉴 시간이 없습니다. 딸들아! 내 엄마란 말이야.
쑥이 쓴맛이 빠졌을 때쯤, 쑥을 건저 물을 꾹꾹 눌러 짜줍니다. 물기가 빠진 불린 쌀과 쑥을 차에 싣고, 읍내에 있는 떡방앗간으로 갑니다. 방앗간 사장님이 덜 바쁘시길 바라면서요.
단골 방앗간 사장님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십니다.
"따님이 와서 떡 하시게요?"
"예, ㄷ 사는 딸이 쑥개떡이 먹고 싶다네요."
"어디서 뜯었나 쑥이 참 좋네요."
쌀과 쑥을 받아 든 사장님이 기계에 넣으며 소금과 설탕으로 대충 간을 합니다.
"아유, 맛있게 좀 해줘요. 대충 간을 하시지 말고. 막내딸이 먹고 싶다고 멀리서 왔는데."
"아줌니 걱정 마셔요. 한두 번 하나. 그렇게 못 미더우면 다른 데 가시던가! 어째 다시 담아요?"
어머니의 부탁에 마음이 상했는지 사장님은 으름장을 놓지만 손은 기계를 돌릴 준비에 바쁘십니다.
"아유, 신경 써달라는 말이지 뭐! 얼른 해줘요."
어머니가 말은 그렇게 하셔도 이곳이 근방 방앗간 중 제일 낫다는 걸 아십니다. 그래도 자식들이 먹을 거라 한번 더 부탁을 하십니다.
"걱정 마셔요!"
사장님은 콧노래를 흥얼거리십니다.
콧노래의 리듬에 맞춰 쌀과 쑥이 기계를 넘나들며 연신 낯빛을 바꾸더니 연둣빛이 됩니다.
연둣빛 커다란 반죽을 들고 집으로 와서 어머니는 똑 같이 4개로 나누어 놓습니다. 사 남매의 몫으로 뭐든지 똑같이 4 등분합니다.
반죽을 탁구공 만하게 떼어 조물조물하다가 넓게 펴서 보름달을 만들어 채반에 놓고 찜니다. 딸들도 손때를 묻혀가며 옆에서 거들지요.
찜기에 김이 오르고 연둣빛 보름달들의 낯빛이 어두워지면 쑥개떡이 됩니다. 채반에 꺼내어 뜨거울 때 참기름을 발라도 좋지만, 어머니는 그냥 쑥개떡 본연의 맛을 좋아하십니다.
딸도 어머니의 식성을 닮아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쑥개떡을 좋아하게 되었지요. 그 딸의 딸들도요.
친정에서 쑥개떡을 먹고 따로 챙기고, 연둣빛 반죽도 한 뭉치 가져옵니다. 동그란 연두 보름달을 빚고 또 빚어 비닐을 깔고 켜켜이 쌓아 냉동실에 넣어두었다가 생각날 때마다 꺼내어 쪄 먹습니다. 조금씩 아껴 먹으면 눈 내리는 겨울까지 어머니의 쑥개떡을 먹을 수 있습니다.
어머니가 해 주신 쑥개떡을 딸들과 하나라도 더 먹으려고 욕심을 냅니다. 내 맘대로 배당을 할라치면 딸들은 부당하다고 합니다. 내 어머니가 주신 건데도 제 맘대로 가 안됩니다.
이제 봄이와도 어머니와 쑥개떡을 쪄 먹을 수는 없지만, 어머니와 쑥을 뜯던 봄날도, 어머니의 수북한 쑥 바구니도, 방앗간 연둣빛 반죽도,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 아이가 되었던 한 낮도, 막 쪄낸 쑥개떡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입안 가득 퍼지는 향도 모두 고향에 있습니다.
언제든지 꺼내 먹어도 줄지 않을뿐더러, 항상 그대로의 어머니 쑥개떡은 해마다 그곳에서 벚꽃 잎이 날리면 만날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