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잠 자면 올레길 15-B코스를 걸어요~
매화꽃이 고개를 들기 시작할 때쯤 코끝을 스치는 알싸한 바람도 조금은 누그러집니다.
봄이 오고 있다는 매화의 전보입니다.
지난겨울 봄이 오면 올레길을 걷자고 다짐을 했습니다. 그 약속을 지키려고 다시 걷기 시작한 올레길을 올해는 얼마나 걷게 될지 모르겠지만, 열심히 걸어보려고 합니다.
이번 주에는 육지에 다녀올 일이 생겨서 토요일에 걷기로 했습니다.
며칠 초여름 같던 삼월 날씨가 다시 쌀쌀해졌습니다.
겉옷은 뭘 입어야 할지 망설이다가 걷다 보면 괜찮지 싶어 얇은 옷을 꺼내 입었습니다.
늦잠을 잔 덕분에 서둘러 준비를 하고 가방에 주섬주섬 물이며 간식, 한라봉을 챙겨 담고 김밥을 포장해 출발했습니다.
출발이 늦으니 걸으려 했던 올레길 코스도 변경해야 합니다. 짧은 코스를 찾다가 15-B코스를 걷기로 했습니다. 걷지 않은 코스 중에서 제일 짧아 선택은 했지만, 날씨가 쌀쌀하고 바람까지 불어서 해안가를 따라 걸어도 괜찮을지 걱정이 됩니다.
가는 동안 김밥을 먹고 도착하자마자 간단하게 몸을 풀면서 올레길 15-B코스 출발점 간세 앞에서 인증 사진을 찍었습니다.
역시나 바람이 저번주와는 사뭇 다릅니다.
"춥다! 많이 추운데 괜찮겠어?"
"난, 괜찮은데 당신은 어때?"
"당신 괜찮으면 됐어. 나도 괜찮아!"
남편이 괜찮다고 대답은 하지만, 정말 괜찮은지 애매모호합니다.
올레길 15-B코스는 한림항에서 고내포구까지 13km입니다.
이 코스는 해안을 따라 한림항에서 수원농로, 켄싱턴리조트 한림점, 제주한수풀 해녀학교, 귀덕1리 어촌계 복지회관, 용문사, 곽지해수욕장, 한담해안 산책로, 애월 환해장성, 애월 초등학교 뒷길, 먼 물습지, 고내포구까지입니다.
출발!!
해안가 바람이 얼굴을 차갑게 감싸 안습니다. 한림항을 따라 걷기를 5분쯤, 남편이 걷기를 멈춥니다.
"아, 춥다! 당신 괜찮아?"
"응, 추워. 해안가라 바람이 더 부는 것 같아."
"그럼 다음에 걸을까? 당신은 어때? 당신이 하자는 대로 할 테니 결정해!"
남편은 영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내 눈치만 살피고 있습니다.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여졌습니다.
바람이 쌀쌀하고 옷이 얇아서 춥기는 한데 다시 돌아가는 것도 내키지 않아 선택을 해야 합니다. 농로 쪽으로 들어가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에 계속 걷자고 했습니다.
"직진!!"
걷다 보니 찬바람 때문에 자꾸 눈물이 납니다. 남편을 뒤쫓으며 눈물을 훔치는 행동이 누가 보면 남편과 싸웠다고 오해하기 딱 좋습니다.
눈물을 닦으며 해안가를 따라 걷다가 수원농로로 들어가니 집들과 돌담이 바람을 막아 주어 훨씬 나아졌습니다.
"안쪽으로 들어오니 해안가 보다 훨씬 따뜻하고 바람도 없네. 좋다!"
"그러게 걷길 잘했지?"
"응, 그럼! 나처럼 말 잘 듣는 남편이 또 어디 있어, 안 그래?"
"그 그렇지."
"아이고!"
시큰둥한 대답에 엉덩이를 툭 치며 앞서가는 남편도 한림항의 봄바람이 무척이나 매서웠나 봅니다.
농로를 따라 비닐하우스가 씌워진 밭에는 생명력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이름 모를 새싹들이 돋아나고, 쉬고 있던 땅은 바쁜 봄날을 맞고 있습니다. 어린 보리를 키워내느라 겨우내 쉬지 못한 밭도 봄기운이 가득합니다.
수원리 농로가 끝나는 곳에서 갈림길이 나옵니다. 이곳이 올레길 15-A코스와 B코스의 갈림길입니다. 초보이신 분들은 이정표를 잘 확인해야겠지요. 올레길은 걷다 보면 길을 잃고 되돌아올 때가 많습니다.
농로를 지나니 다시 해안가 길이 나옵니다. 처음 걷기 시작했을 때보다는 바람이 잔잔합니다. 제주한수풀 해녀학교를 지나 귀덕리 어촌계 복지회관 해안로에서 영등할망을 만났습니다.
영등할망은 음력 2월 1일 제주에 왔다가 영등바람을 뿌리고 15일에 제주를 떠났다는 바람의 신입니다. 겨울과 봄 사이에 부는 바람으로, 영등할망이 봄을 만들기 위해 뿌리는 1만 8천 종의 서북계절풍이라고 합니다. 올레길 15-B코스에서 만난 영등할망의 바람은 칼바람이었나 봅니다. 무척 매서웠거든요.
칼바람과 함께 영등할망도 사진에 담으며 금성천 주변에서 중간 스탬프를 찾았습니다. 찾지를 못해 지나쳤나 싶어 근처를 되돌아봐도 꼭꼭 숨어버렸습니다. 어쩔 수 없이 완주하고 다시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곽지해수욕장을 걷다가 애월빵공장이 보여 잠시 쉬어가려고 들어갔습니다. 예전보다 사람도 줄고, 빵도 줄고, 1층은 텅 비어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관광객이 많이 줄었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따뜻한 봄볕에 걸으면 참 좋은 한담 해안산책로가 오늘은 춥게만 느껴집니다. 날씨가 갑자기 흐려지기 시작합니다. 종점을 향한 빠른 걸음뒤에 애월초등학교 뒤편길 벚꽃이 꽃망울을 피워내고 맞아 줍니다. 바람이 쌀쌀해도 봄은 환한 미소로 옵니다. 영등할망의 쌀쌀한 바람과 함께한 해안가 코스였지만, 드디어 종점 고내포구에 도착했습니다. 인증 사진을 찍고 잠시 올레길 안내소에서 숨을 고릅니다.
택시로 차가 있는 한림항에 도착 후 놓쳐버린 중간 스탬프를 찾아갔습니다. 중간 스탬프의 위치가 바뀌었다는 안내판을 지나쳐 놓고, 엉뚱한 곳에서 찾으려니 보일리가 없지요.
스탬프 앞에서 올레수첩을 꺼내는데 비가 쏟아집니다. 걷다가 비가 와서 뛰는 사람도 보입니다. 완주하고 나서 비가 오니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멈추지 않고 걷기를 잘한 것 같습니다.
늦은 시작이었지만 코스를 변경하는 것으로 포기하지 않았고, 걷다가 영등할망의 칼바람에도 굴하지 않아서 완주할 수 있었던 올레길 15-B코스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