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일상에서

새로운 시작과 함께한 일상

by 데이지

새로운 시작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합니다.

그중엔 결이 맞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혀 색다른 성향의 사람도 만나기 마련이지요.

관심이 있었던 교육이 육지에서 한다기에 일정에 맞춰 비행기를 탔습니다. 강의는 일주일간 하루에 8시간씩 들어야 합니다. 강의 첫날 눈에 띄는 자리를 찾아 앉았고 옆 사람, 앞, 뒷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인사를 나누며 몇 마디 말이 오가고 쉬는 시간이면 같이 차를 나누며 혼자 먹어야 하는 점심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한 마디 건넨 인사로 모르는 무리 속에서 혼자 들어야 했을 강의도 내내 함께 듣습니다.

첫째 날에는 간단히 식사만, 둘째 날에는 식사와 차를 마시며 간단한 담소를 나누었고, 셋째 날에는 살아가는 일상의 이야기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이야기들입니다.


마지막 강의가 있던 날 점심에 돌솥밥과 한 상 잘 차려진 나물로 우리들만의 만찬을 즐겼습니다. 고생한 시간에 대한 작은 보상이었습니다. 봄나물 만찬을 즐기고 차를 마시기 위해 카페를 찾아 걸었습니다. 거리에는 벚꽃들이 팡팡 화사하게 꽃망울을 터트렸고, 봄바람은 수줍은 듯 꽃잎을 품고 달아납니다. 달아나는 벚꽃 잎을 잡아보려 욕심을 내지만 매번 허탕입니다. 그 모습에 머쓱해하며 한바탕 크게 웃습니다. 코끝을 스치는 알싸한 꽃바람에 몽글몽글 피어나는 설렘, 봄날이 선물한 평온한 오후입니다.


카페를 찾아 주문을 하고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손에 든 따뜻한 커피와 귓가를 지나가는 봄바람이 참 좋습니다. 봄바람의 유혹에 취해 일행 중 한 분이 어릴 적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지금처럼 봄바람이 살랑일 때 어머니는 겨우내 덮었던 이불 홑청을 뜯어 빨아 널으셨다고 합니다. 높은 장대 끝 빨랫줄에 이불 홑청이 나부끼고 그 사이사이를 왔다 갔다 숨바꼭질을 하며 놀았던 기억입니다. 바람이 술래였고 이불 홑청이 친구였습니다. 아이는 술래도 친구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는 혹여라도 힘들게 빨아 널은 이불이 떨어지기라도 할까 봐 혼을 내셨다고 합니다. 한 번쯤은 놀다가 더러워진 손으로 이불에 자국을 남기기도 하니까요. 그 순간 듣고 있던 우리는 어느새 각자 앞마당 빨랫줄에 걸려 있는 이불 홑청 사이를 지나다니며 놀고 있었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 재미있던 숨바꼭질도 영영 지워버리나 봅니다.


이야기 끝에 다른 분에게 공감의 추억이 넘어갔습니다. 그분은 빨래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아이였답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면 어머니에게 빨래를 하고 싶다고 매일 같이 졸랐답니다. 더러워진 곳을 깨끗하게 빨면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 같았답니다. 하루는 졸라대는 딸에게 어머니가 커다란 이불을 빨아오라고 주셨다고 합니다. 기쁜 마음에 빨간 대야에 담아 당장 빨래터에 가서 열심히 빨았다고 해요. 재미나게 빨고 열심히 빨면서 놀다가 깨끗해졌다 싶어, 커다란 대야에 담아 들으려 하니 무거워서 들을 수가 없었답니다. 이불이 물을 머금어 무거워졌으니 당연하지요. 엄마에게 빨리 보여주고 싶었는데 집까지 들고 갈 수 없는 마음에 울음이 터졌다고 합니다. 다행히 지나가던 이모가 와서 집까지 이불이 든 대야를 들어다 주셨답니다. 이모가 아이에게 커다란 이불빨래를 시킨 어머니에게 이유를 묻자 매일 빨래를 하겠다고 졸라서 그랬다고 합니다. 힘들어봐야 다시는 빨래한다고 안 할 테니까요. 그러거나 말거나 이불이라도 빨래하는 동안은 즐거웠고 지금도 빨래를 좋아한다며 집안에 시냇물이 흐르는 곳에서 사는 것이 소원이라고 합니다.

아마 걸레질 한 번, 빨아 또 걸레질 한 번, 빨래에 진심인 웃음 가득한 얼굴이 보이는 듯합니다.


걸레라도 빨래라면 좋다는 이야기에 어릴 적 빨래터에 쫓아다녔던 생각이 났습니다. 어머니는 퍽 깔끔하신 분이셨습니다. 어머니가 빨랫감을 들고 빨래터에 가실 때를 놓치지 않고 꼭 따라나섰습니다. 집에서 소나무가 울창한 작은 언덕을 내려가 골목을 돌아가면 작은 시냇물이 흐르는 빨래터가 나옵니다. 어머니의 발걸음을 쫓아가려면 종종걸음으로 뛰다시피 따라갔습니다.

동네 빨래터에는 규칙이 있습니다. 오는 순서대로 물줄기 아래에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위쪽으로 갈수록 물이 맑기 때문입니다. 빨래터에 사람이 없으면 넓게 쓰다가 사람이 많아지기 시작하면 서로들 자리를 좁혀 앉습니다. 위쪽에서 빨래가 끝나면 한 자리씩 위쪽으로 이동하면 됩니다.

시냇물은 맑고 깨끗해서 송사리, 조개, 가재도 살고 있었습니다. 바지를 허벅지까지 말아 올리고 물에 들어가 노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가재를 잡다가 손가락을 물린 적도 있었고, 조개나 물고기를 잡아 놓아주기도 했습니다. 어머니가 빨래를 하는 동안 물고기를 잡으려고 물줄기를 거슬러가면 흙탕물이 생긴다고 혼이 나기도 합니다. 한참을 놀고 나서 심심해지면 어머니에게 양말이나 걸레를 얻어 빨고 또 빨았던 기억도 있습니다. 빨래가 끝나고 대야에 물끼를 비틀어 짠 빨래가 쌓이고 빨래 방망이와 비눗갑을 씻으면 빨래가 끝납니다.

올 때는 빨래에 비눗갑을 담고 오지만 갈 때는 비눗물이 빨래에 묻을까 봐 제 몫이 됩니다. 한 손에는 비눗갑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빨래 방망이를 들고 또 뛰다시피 어머니를 쫓아가지요. 어머니는 걸음도 빠르고 뭐든지 척척 해내시는 분이셨습니다.

집에 오면 새하얀 빨래를 마당에 있는 빨랫줄에 널어야 합니다. 하나씩 툭툭 털어 너시며 봄바람에 떨어지기라도 할까 봐 집게로 고정을 시키고, 빨래가 겹치지 않게 나란히 너십니다. 마지막으로 장대를 이용해 무거워진 빨랫줄을 지지하고 높게 고정하면 빨래가 끝이 납니다.

봄바람이 스치고 지나가면 내 양말도, 바지도, 할머니의 버선도, 오빠들의 티셔츠도 흔들흔들 춤을 춥니다. 때때로 발을 흔들고, 팔을 흔들면서 열심히 바람과 즐겁습니다. 따뜻했던 햇살이 숨을 때쯤 빨갛게 물들던 하늘도, 햇볕 냄새를 품은 빨래도 어제일 같습니다.


두 시간이 채 안 되는 점심시간 차를 마시며 봄바람이 실어온 추억들을 만났습니다. 때로는 웃음도 아쉬움도 그리움도 느껴져 가슴을 촉촉하게 합니다. 서로 다른 이들이지만 이 순간은 하나입니다. 같은 시대를 살아온 만남이 주는 공감입니다. 사는 내내 허투루 지나가는 시간은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봄날이 주는 소소한 일상이 모여 삶의 일부가 될 테니까요.

벚꽃이 피고 지고 다시 피는 내내 기억할 이 봄날이 참 소중합니다.















keyword
수요일 연재
이전 14화일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