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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무엇을 찾고 싶었던 걸까요?

by 데이지

무작정 집을 나서서 걸었습니다.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멈춘 곳이 단골 카페입니다. 안으로 들어가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앉아 주위를 살피다가 창밖으로 배낭을 메고 지나가는 청년에게 멈췄습니다. 모자 달린 티셔츠에 통이 넓은 청바지를 입고 뭔가 바쁜 일이 있는지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고 있습니다. 저 청년은 무슨 일로 서둘러 가고 있는 걸까요? 누군가와의 약속에 늦기라도 한 걸까요? 아니면 집에 중요한 것을 놓고 와서 다시 가지러 가는 걸까요? 가방이 들썩이도록 앞만 주시하며 빠르게 걷는 청년에게 괜히 말참견을 하고 싶어 집니다. 바삐 어디를 가는 거냐고. 지나가는 청년의 모습에서 무엇을 찾고 싶었던 걸까요?


궁금증만 가득 남긴 청년이 사라지고 눈길은 방향을 잃었습니다. 다행히 카페 안으로 들어오는 한 남자를 발견했습니다. 두툼한 외투에 양손에는 장갑을 끼고 있습니다. 그 남자가 카페 안을 둘러보며 무언가를 찾는 듯 훑어봅니다. 약속이 있는 걸까요? 남자의 시선을 따라 카페 안을 둘러보았지만, 일행으로 보이는 손님은 눈에 띄지 않습니다. 문득 저 손님은 약속을 하면 먼저 나가서 기다리는 편일까요 아닐까요. 조금 전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습에 느긋함이 옆 보였으니 약속을 하면 먼저 나와 기다리는 분이 아닐까 짐작을 해 봅니다. 사람들이 약속을 지키는 행태만 봐도 어떤 성향인지 느끼듯이 저 손님은 신중한 편인 것 같습니다. 주문을 마치고 출입구가 잘 보이는 쪽으로 자리를 잡는 손님의 모습에서 무엇을 보고 싶었을까요?


한낮의 카페 안은 한산합니다. 새로운 손님이 들어오지 않아 직원도 여유가 있습니다. 간간이 손님이 마시고 간 컵과 쟁반을 정리하거나 핸드폰을 들고 뭔가를 보고 있습니다.

다시 시선은 갈 곳을 잃었습니다. 머물 곳을 찾아 헤매다가 커피숍 통창너머로 유치원에서 나오는 아이들을 봤습니다. 추운 날씨에 알록달록 색색의 두툼한 외투와 털부추를 신고 있습니다. 똑같은 유치원 가방을 멘 아이들은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미니 버스에 오르려고 줄을 서고 있습니다. 유치원 하교 시간인가 봅니다.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종종걸음으로 끌려가다시피 차에 오르기도 합니다. 한 아이는 엄마 손을 잡고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있습니다. 엄마 대신 할머니가 마중을 나온 아이도 눈에 띕니다.

아이들을 태운 버스가 떠나자 북적이던 유치원은 텅 비었습니다. 한 아이가 남아서 늦으시는 부모님을 기다립니다. 이제 선생님은 혼자 빈 교실에서 뒷정리를 시작할 시간입니다. 아이들이 떠나간 유치원은 내일을 위한 휴식을 맞이할 시간이고, 집이나 학원에서는 여유로웠던 시간을 멈추고 아이들과 일상을 시작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아이들이 돌아간 텅 빈 유치원엔 무엇이 남아 있을까요?


딸랑 소리와 함께 방금 유치원에서 보았던 손녀와 할머니가 손을 잡고 카페 안으로 들어옵니다. 손녀는 할머니를 따라 자리에 앉았습니다. 할머니는 손녀의 가방과 외투를 벗기고 차가워진 볼을 쓰다듬어 주십니다. 손녀는 가방에서 해바라기 꽃을 꺼내어 주문을 하고 돌아오는 할머니에게 건넵니다. 손녀의 손에 들린 꽃을 받아 든 할머니는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한 얼굴입니다. 할머니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손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십니다. 그리곤 예쁘다고, 선물이냐고, 고맙다고 하시며 손녀를 꼭 안아 줍니다. 할머니를 생각하며 만드는 내내 행복했을 손녀의 마음이 담긴 해바라기꽃은 사랑입니다.

때마침 할머니가 주문한 따뜻한 차와 달콤한 케이크가 나왔습니다. 할머니와 손녀는 사랑이 듬뿍 담긴 맛있는 시간을 즐깁니다. 사랑을 만든 손녀도 달콤한 시간의 맛을 준비한 할머니도 활짝 핀 해바리꽃입니다.

손녀가 살아갈 인생은 때때로 원하지 않더라도 지금처럼 달콤한 맛이 필요한 시간을 선물합니다. 아마 손녀는 지금을 기억하며 버텨낼 것입니다.

할머니와 손녀를 지켜보며 마음속 깊숙이 간직했던 내 달콤한 시간의 맛이 떠올랐습니다. 그 달콤한 시간이 제게도 있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습니다. 무작정 집을 나서서 찾았던 것이 이 달콤한 시간의 맛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창밖으로 바쁘게 지나가던 청년도 카페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손님도 나처럼 뭔가를 찾아 나선 것은 아니었을까요? 아니면 잠시 숨 고르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돌아오는 발걸음이 집을 나설 때와는 사뭇 다르게 가볍습니다. 가끔은 다른 사람의 인생도 지켜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찾으려는 무엇이 타인에게서 보일 때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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