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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둘이서 올레길 13코스를 걷다

by 데이지

일요일 아침 베란다 창으로 바라본 한라산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한라산이 잘 보인다는 것은 미세먼지가 심하지 않다는 뜻도 되지요. 봄이면 제주도도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휴일 아침 날씨도 맑고 별다른 일이 없어 남편과 함께 올레길을 걷기로 했습니다.

세수를 하고 옷장과 옷 서랍을 뒤집어 가며 옷을 찾는 동안 남편은 작은 배낭에 장갑, 얼굴을 가리는 마스크, 간단한 간식과 물을 챙기며 준비를 끝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집 앞 김밥 집에 김밥 두 줄을 주문했습니다. 김밥은 가는 동안 차 안에서 먹을 아침입니다. 올레길을 걸을 때면 아침은 간편하게 김밥으로 해결합니다.

차 안에서 김밥을 나누어 먹으며 딸들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남편은 일요일이면 딸들과 통화를 하며 주말엔 무엇을 하며 보내는지, 내주에는 특별한 일이 있는지 묻곤 합니다.

이런저런 말을 하다 보니 벌써 용수포구에 도착을 합니다.

제주의 봄바람은 언제 변덕을 부릴지 몰라 해안보다는 내륙 쪽 올레길 13코스를 걷기로 했습니다. 봄바람은 포구의 배와 널어놓은 오징어에도 살랑살랑 가볍게 흔들며 스쳐갑니다. 걷기에 안성맞춤입니다.


올레길 13코스는 용수 포구에서 시작해 용수 교차로, 용수 저수지, 먼고 돌담, 고목 숲길, 고사리 숲길, 낙천리 사무소, 낙천 의자공원, 낙천잣길, 퐁낭, 뒷동산 아리랑길, 저지 오름, 저지예술 정보화마을까지입니다.

거리는 용수 포구에서 저지오름까지 16킬로미터로 길지 않은 코스입니다. 해안은 용수포구에서만 만날 수 있고 중산간 밭길이 펼쳐진 난이도 중간의 올레길입니다.

시작점 스탬프 앞에서 올레수첩에 도장을 찍고, 인증 사진을 찍으면 출발 준비가 끝납니다. 잠시 몸을 풀고 모자와 얼굴을 가리는 마스크를 귀에 걸어쓰며 출발합니다.

담장 너머 개나리는 활짝 팔 벌려 반기고, 노란 나비 떼 같은 유채꽃이 날개를 양껏 펴고 밭길에 피었습니다. 파란 하늘 가득 백목련이 손수건을 흔들고 있습니다. 어린 보리는 바람에 고개를 살랑이며 고갯짓을 하고, 철이 지난 아기동백은 활짝 반겨줍니다. 눈으로 봄을 느끼며 골목골목을 걷는 즐거움이 오래간만입니다.


올레길 13코스는 제주에서 보기 드문 저수지가 곳곳에 있습니다. 걸으며 만난 첫 번째 용수저수지에는 강태공도 보입니다. 벤치에 앉아 잔잔한 저수지를 바라보며 잠시 바람과 함께 머물기도 했습니다.

고목이 눈길을 끄는 숲길을 걸어서 좋고, 겨울 무와 양배추 밭이 펼쳐진 밭길도 좋습니다. 양배추 수확을 하는 밭에 노란 컨테이너가 유난히 샛노랗게 보이고, 밭을 갈아 새로운 씨앗을 뿌릴 준비를 하는 트랙터가 분주합니다. 나른한 봄햇살아래 바쁜 농부와 일손을 거드는 청년도 보입니다. 가끔씩은 코스를 거꾸로 걷는 사람을 만나 인사를 건넵니다. 얕은 웅덩이에는 올챙이도 보이고 작은 저수지에는 어린 물고기들이 빼곡합니다.

여기저기 모두가 봄입니다.


올레길 13코스는 밭과 숲의 볼거리가 많은 길입니다. 김밥 한 줄로 세 시간을 걷으니 허기가 집니다. 이 코스는 낙천리 마을과 종점 마을 외에는 식당이 없습니다. 낙천리 마을은 작아서 카페 두세 곳과 식당은 한 곳뿐입니다. 메뉴를 따로 고민할 필요가 없어서 좋습니다. 펜션과 같이 운영하는 식당의 메뉴는 돈가스입니다. 주인장이 문까지 열어주시며 반겨줍니다. 이 식당은 돈가스가 부드럽고 생선가스와 양배추 샐러드도 신선합니다. 잠시 쉬었다가 낙천리 마을이 다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에 올라가서 nine good, 아홉 개의 연못 마을을 보고 내려왔습니다.

낙천리는 제주에서 처음으로 대장간이 시작된 곳으로 재료인 점토를 파낸 아홉 개의 구멍에 물이 고여 샘이 되었다고 합니다.


올레길을 몇 달 만에 걸으려니 발바닥이 아픕니다. 잠깐씩 쉬었다 걷어서 시간도 늦어집니다. 드디어 코스 마지막 저지 오름 앞에 도착했습니다. 저지 오름은 해발 239m로 정상에는 원형의 분화구를 갖고 있습니다. 저지 오름은 닥모루 또는 새 오름이라고도 부르고 생명의 숲으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마지막 힘을 내어 저지 오름에 올라 전망대에서 마을을 둘러보고 분화구를 중심으로 둘레길을 걷고 내려왔습니다. 종점에 도착해 스탬프를 찍고 인증 사진을 찍었습니다. 걸음은 3만 보, 시간은 5시간 30분 소요, 올레길 13코스를 완주했습니다.

딸과 함께 걸을 때는 한 코스를 두세 번에 나누어 걸었지만, 하루에 한 코스를 완주하려니 무리를 한 것 같기는 해도 바람도 적당하고 봄을 한 껏 느꼈던 봄날의 나들이였습니다.

봄날의 하루는 올레길 시작점에서 종점까지 완주하며 만났던 많은 것들을 품고 흘러갑니다. 이 봄날의 만찬은 인생에서 처음이고 다시 올 수 없는 마지막 시간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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