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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를 생각하지 마세요

부정어를 잘 인식하는 2가지 이유

by 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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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저녁 여자친구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소파에 앉아서 기분 나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왠지 모르게 나를 그윽하게 보는 거 같고, 왠지 모르게 내가 잘못한 거 같고, 그 왠지 모르는 분위기가 너무 섬뜩했다.


"오빠 나 할 말이 있는데"


(아니야 말하지 마. 뭔지 모르겠지만 내가 다 잘못했어.)


"나 이번 주에 너무 바빴거든? 주말에는 진짜 푹 잘 거니까 깨우지 마. 깨우면 진짜로 죽여버릴 거야"


(아 오케이 나는 또 뭐라고. 에이 어려운 부탁도 아니고 그 정도라면 충분히 들어줄 수 있지.)


그렇게 토요일 아침이 되었다. 아침 7시. 생각보다 눈이 빨리 떠졌다. 게다가 몸도 날아갈 것 같이 개운했다. 옆에 누워있는 여자친구를 봤다. 음 격렬하게 깨우고 싶었다. 아 맞다. 어제 분명 깨우지 말라고 했지. 하지만 오늘은 주말이고, 밖에서 들어오는 햇빛을 보니 날씨가 너무나도 좋았다. 이 좋은 날 놀러 안 가도 되나? 내가 일찍 깨워서 재밌게 놀면 오히려 고맙다고 말하지 않을까? 손가락으로 볼을 살짝 건드려봤다.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벌렸다. (손가락 잘릴 뻔했네.) 천장을 잠깐 보면서 모르는 척했다. 30초가 지나고 또다시 깨우고 싶었다. 원래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거 아닌가? 진짜 깨우지 말라고 할 거면 내일 푹 자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어야지. 그래 이건 깨워달라는 마음이 무의식 중에 있었던 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 정리가 되고 여자친구를 양팔로 강하게 깨웠다. 요약하자면 나는 그날 강하게 맞고 죽을 듯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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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하지 말라고 하면 이상하게 더 하고 싶어졌다. 어릴 때도 선생님이 "교실에서 수업 중에 과자 먹지 마세요"라고 하면 지우개 줍는 척 책상 밑에 있는 과자를 하나씩 꺼내 먹었다. "복도에서 뛰지 마세요"라고 말하면 눈치 보다가 열심히 뛰어다녔다. 만약 선생님이 시험 기간에 "열심히 공부하지 마세요"라고 말씀해 주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쩌면 이미 수능 만점자로 유퀴즈에 출연했을지도 모른다. 유재석 형님이 "수능 비법이 뭐였나요?"라고 질문하면 "이게 다 선생님의 청개구리 공부법 덕분입니다."라며 입이 닳도록 칭찬했을 텐데.


하지만 나만 유독 청개구리 기질이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뇌과학책에 따르면 우리 인간은 원래 부정어를 처리하는데 힘들어한다. 부정어인 “하지 마라”, “아니야”를 이해하려면 전두엽에서 긍정적 진술을 먼저 이해한 후, 그 의미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원숭이를 생각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들으면 뇌는 먼저 '원숭이'를 상상한 후 그것을 부정하여 처리한다. 즉시 코끼리나 기린을 생각할 수 없다. (방금 또 코끼리랑 기린이 생각났다!) 또한 빠른 상황 판단이 필요한 경우에는 부정어가 무시당하는 경우도 있다. 만약 추운 날 꽁꽁 얼어붙은 내리막길 위로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때 옆에서 "넘어지지 마세요"라고 말을 하면 "넘어진다"는 이미지가 바로 떠오르기 때문에 실제 행동에서는 오히려 균형을 잡기가 더 어려워진다. 실제로 그 말을 듣고 넘어진 적이 있다. (차라리 "잘 걸어가세요"라고 말해주는 게 좋을 수도)


특히 어린아이 같은 경우에는 전두엽이 아직 성인보다 미성숙하다. 따라서 부정어를 처리하는 능력도 아직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다. 내가 어릴 적 선생님에게 "복도에서 뛰지 마!"라는 명령 대신에 "운동장에서 뛰어다니는 게 더 빠를걸"이라는 긍정적인 표현을 들었다면 더 이해하기 쉬웠을 거다. 어쩌면 복도에서 손들고 벌서지 않고 육상 선수가 되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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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예시들처럼 우리의 뇌는 부정어를 처리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또한 긍정어를 우선적으로 이해하는 특성이 존재한다. 따라서 이를 인정하고 일상생활 속에서 가성비 있게 살아야 한다. 효과적이게 써먹을 수 있는 꿀팁 몇 가지를 생각해 봤다.


평소에 "운동하기가 정말 어려워"라고 생각하면 운동은 진짜 어려운 것이라고만 느껴진다. 대신에 "운동하기 정말 쉽지 않다"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얼핏 보기에 문장의 뜻은 비슷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바로 '쉽지 않다'는 말은 '쉽다'는 것도 함께 떠오른다는 것이다. 뇌에서 긍정적 처리 경로를 활성화하여 "어쩌면 노력하면 할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갖도록 만든다. 결국 난이도는 인정하면서도 가능성까지 열어두는 것으로 완전 럭키 비키한 말이다!


- 남을 비난하기 전에 나부터 생각하기가 정말 (어렵다 x) 쉽지 않다.

- 일 끝나고 집에 오자마자 샤워하는 건 정말 (어렵다 x) 쉽지 않다.

- 평범한 일상 속 소중한 순간을 발견하는 건 정말 (어렵다 x) 쉽지 않다.

- 평소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표현하는 건 정말 (어렵다 x) 쉽지 않다.

- 평소 고마운 사람에게 고맙다고 표현하는 건 정말 (어렵다 x) 쉽지 않다.

- 항상 당연하다고 느껴지는 사람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건 정말 (어렵다 x)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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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다윈의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인간은 원래 부정적인 것을 더 강하게 인식하고, 기억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DNA 속 내재된 생존적 본능 때문이다. 원시시대로 거슬러가면 우리는 수렵, 채집을 하면서 생존했다. 그 당시에는 사냥을 할 때는 '총' 이런 것들이 없었다. 기껏해야 돌, 나뭇가지를 날카롭게 깎아서 사용하는 게 전부였다. 도구가 있다고 해도 비교적 연약한 인간이 맹수들을 상대하기에는 무척 어려웠을 거다. 이건 '쉽지 않은' 게 아니다. 진짜로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어려웠다'.


"저기에 호랑이가 있는데 돌로 때려서는 안 죽어. 오히려 내가 죽을 뻔했어. 쟤는 그냥 사냥하지 마.ㅍ 거기에 가지 마. 럭키비키 따위는 없어. 진짜 죽는다고"


요즘 시대에 '럭키비키'가 유행어라면 원시시대에는 '하지 마', '가지 마'가 유행어였을 거다. 그 말을 쓰지 않거나, 기억하지 않는 인간은 다 죽었을 거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부정적인 말을 잘 쓰고, 잘 기억하는 인간들의 자손이다. 우리가 부정적인 것을 더 잘 느끼는 것도, 더 잘 기억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DNA가 전해졌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런 DNA를 갖고 있다고 해도 그렇게 살아야 할까? 사실 외계인이 침략해서 지구가 다시 원시시대로 돌아가지 않는 한 그럴 필요는 없을 거다. 지금은 굳이 부정적인 말을 기억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다. 아니 어쩌면 요즘 시대는 긍정적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래야 정신적, 신체적 건강에 매우 이롭기 때문이다. (조상님 유행이 다시 바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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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말이 쉽지 이미 DNA에 박힌 것을 무시하고 유행을 따라가는 건 쉽지 않다. 물론 현재 과학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해서 DNA를 수정하거나 변경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윤리적인 문제 때문에 사람의 DNA까지 바꾸는 건 불가능하다. 그럼 자꾸만 생각나는 이 부정적인 것들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요즘 가장 똑똑하다는 ChatGPT에게 물어봤다. 정답은 부정적인 생각은 누구나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음을 인식하고, 이를 긍정적으로 바꾸는 의식적인 연습과 반복을 하라고 했다. 곧바로 작은 변화부터 이끌어내고 싶었다. 영어를 잘하고 싶다면 단어부터 외우듯,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꾸는 단어들을 몇 가지 적어봤다.

부정적이다→신중하다, 예민하다→섬세하다, 성급하다→추진력 있다, 냉정하다→객관적이다, 불안하다→대비를 잘한다, 고집이 세다→의지가 강하다(끈기가 있다, 소신 있다), 느리다→신중하다, 이기적이다→자신을 돌볼 줄 안다, 지루하다→안정적이다, 무계획적이다→유연하다, 변덕스럽다→유연하게 대처한다, 충동적이다→결단력이 있다, 냉소적이다→현실적이다, 겁이 많다→조심성이 있다, 욕심이 많다→성취욕이 있다, 의심이 많다→분석적이다, 무뚝뚝하다→침착하다, 잔소리가 많다→세심하게 챙긴다, 참견을 많이 한다→관심이 많다, 까다롭다→기준을 잘 잡는다, 냉담하다→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산만하다→다방면에 관심이 많다, 완벽주의자다→철저하다, 무모하다→모험심이 있다, 말이 많다→소통을 좋아한다, 예측 불가능하다→창의적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DNA와 뇌 구조상 부정어를 잘 인식하고 잘 기억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꾸준한 노력을 통해 긍정적인 면도 바라보고 싶다. '나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도대체 뭔가?' 하는 자괴감이 들 때조차 '나는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된다'라고 바꿔 생각해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기면 좋겠다. 긍정적인 에너지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어주길 희망한다.



이 글을 보고 있는 여러분도 오늘 수많은 부정적인 순간들이 있었을 거다. 어떻게 알 수 있냐고? 우리는 다 같은 조상들의 자손이니까^^우리 모두 힘들고, 어렵고, 부정적인 것들 속에서 살아가지만 언제나 지혜롭게 긍정적인 면들을 바라보며 살아가면 좋겠다. 주위에 사람들과 서로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고받으면 좋겠다. 이제 우리는 달라졌다. '행복'의 저자 법륜 스님은 내가 가진 조건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때 일도 더 잘 풀리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언제나 말처럼 쉽지는 않을 거다. 그렇기 때문에 꾸준히 노력하고 싶다. 그게 바로 행복한 사람들의 방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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