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 왜 하냐? 그걸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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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이야기다. 수능이 끝나고 정시 원서를 접수하는 시기였다. 담임 선생님은 한 명씩 교무실로 불렀다. 교실에 남은 친구들은 칠판에 붙은 대학 정시표를 보고 있었다. 보통은 본인 점수에서 가장 좋은 학교들만 봤다. 학과는 그다음 선택이었다. 나는 반대였다. 정시표에서 간호학과만 찾아봤다. 남자 고등학교라 그런지 다들 간호학과에 관심이 없었다. 주변에 정보가 부족했다. 선생님에게 물어볼 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내 순서가 되었다. 교무실에 노크를 하고 문을 열었다. 조심스럽게 고3 담임 선생님들이 모여있던 안쪽자리로 들어갔다.
"어 그래 태섭아. 교실에 있는 학교 등급컷 보고 있었나. 어디 학교로 생각하고 있노?"
"아 저는 제 점수에서 가장 좋다고 하는 간호학과요. 학교는 상관없습니다."
그 순간 거기에 있던 선생님들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물론 담임 선생님만 빼고. 갑자기 책상에 있던 막대기를 손으로 집으시더니 내 머리를 빡 하고 때렸다.
"이 새키 간호학과는 무슨! 너 여자 보려고 거기 갈려는 거제!"
솔직히 간호학과 간다고 때릴 줄은 몰랐다. 단지 어릴 적 엄마랑 병원 다닐 때부터 꿈이었다고 말했다. 간절한 이야기에도 의심을 받는 건 똑같았다. 그럴만한 이유도 있었다. 한 학년 120명 중에 간호학과 원서를 넣은 건 나 혼자였기 때문이다. 담임 선생님은 너 같이 아무것도 모르고 접수하려는 애가 왜 없겠냐며 따발총처럼 공격했다. 나는 머리에 구멍이 생길지언정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부모님과 이야기도 끝났고, 여자 대통령도 있는 시기에 성별이 무슨 문제냐며 방어에 성공했다. 결국 선생님은 15년 교육 생활 중 처음으로 간호학과에 원서 접수한다고 이야기했다. 이후에 소문 들은 친구들도 나를 신기한 놈으로 생각했다.
"간호사? 남자가 할 수 있는 거야?"
"엥? 간호학과? 거기에 가면 여자 많아서?"
"에이.. 남자가 무슨 간호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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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간호학과에 들어가 보니 신입생 150명 중 고작 10%만 남자 학생이었다. 그것도 남자 학생을 많이 뽑은 경우라고 했다. 선생님 말처럼, 친구들 말처럼 간호학과에는 여자가 많았다. 그렇다고 엄청 좋지는 않았다. 얼마 후 군대를 갔다. 반대로 남자가 많았다. 그렇다고 엄청 좋지는 않았다. 어떤 곳이든 마찬가지였다. 역시 뭐든지 적당한 게 가장 좋다고 생각했다.
2020년 간호학과를 졸업했다.(군대 2년 포함) 처음 반대했던 담임 선생님에게 간호사가 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마침 선생님의 번호가 남아 있었다. 한 번 찾아봬도 괜찮냐는 연락을 드렸다. 다행히 아직 학교에서 근무 중이라고 오라고 하셨다. 자랑할 생각에 가슴이 막 두근거렸다.
6년 만에 간 고등학교는 모든 게 정겨웠다. 운동장, 식당, 축구대, 농구대, 강당, 계단, 교실, 야간자율실 그리고 매점까지. 조금씩 달라진 것들도 있었지만 향기만은 달라지지 않았다. 교무실 앞에서 노크를 하고 들어갔다. 이번에는 종합 음료수 세트를 들고 당당하게 걸었다. 새로 보는 선생님들이 대부분이었다. 담임 선생님의 위치도 바뀌었다. 나는 음료수를 책상 옆에 두고 둥근 스툴 의자에 앉았다. 요즘 뭐 하고 있냐는 질문에 나는 준비하고 있던 대답을 속 시원하게 말했다.
"선생님 덕분에 간호학과 잘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병원에 취업했어요!"
이번에 선생님은 내 머리가 아닌 손뼉을 쳤다. "오 태섭이 네가 간호사가 된 거야?" 처음 보는 선생님들에게 나를 데리고 다니며 자랑했다. 선생님 수업 시간에도 같이 들어갔다. 후배들에게 10분 정도 간호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교실은 똑같았지만 남자 학생들의 질문이 달라졌다. "그걸 왜 하냐?"가 아닌 "그걸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라는 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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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제64회 간호사 국가시험에서 남자 합격자는 4,050명으로 전체 합격자의 17.2%를 차지한다. 내가 간호학과에 들어갔던 10년 전과 비교하면 15%나 증가한 수치다. (오늘은 2025년 제65회 간호사 국가고시 날이었다. 그동안 공부하느라 모두들 고생하셨습니다!)
내가 남자 간호사로 일한 지도 6년 차가 되었다. 병원 환경은 체감될 정도로 달라졌다. 가장 좋은 건 남자 탈의실 환경이다. 신규 때는 다른 직종의 탈의실에서 눈치를 보며 옷을 갈아입었다. (잠깐이지만 화장실 옆 구석진 창고에서 갈아입은 적도 있었다.) 지금은 남자 간호사가 많아진 덕분에 쾌적한 공간이 생겼다. 탈의실뿐만 아니다. 병원 특수파트인 <응급실, 중환자실, 수술실, 정신의학과 등>에만 집중되었던 인력 배치도 달라졌다. 최근에는 대부분의 병원에서 남녀 간호사를 구분 없이 배치하고 있다. 이제는 업무상 소아 병동, 여성 병동에 있는 남자 간호사와 전화하는 경우도 생겼다.
요즘도 "아이고 남자 간호사네!"라며 이야기하는 환자들이 있다. 그때마다 고등학교 때가 떠오른다. 내가 만약 선생님과 친구들 이야기에 휘둘려서 포기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 취업은 제대로 했을까? 원하는 걸 하면서 살 수 있었을까? 우리는 모두 자신의 목표나 생각이 있다. 각자의 모양대로 살기 위해 태어났다.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불완전하다. 불완전 상태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믿기란 쉽지 않다. 생각보다 많이 두렵고, 생각보다 잘 안 돼서 힘들다.
두려움과 희망은 하나이다. 두려움 없는 희망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정해져 있는 시간은 희망이라고 부르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드는 건 그만큼 희망찬 내일이 기다리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월트 디즈니는 "당신을 설레게 만드는 목표는 이루어질 가능성이 더 크다"라고 말했다. 그날을 상상했을 때 설렌다면 자신의 가능성을 더 믿어야 할 때다. 주변에서 뭐라고 해도 상관하지 말자. 그냥 미친 척 그날은 꼭 온다고 말하고 다녀도 된다. 남에게도, 자신에게도 자랑스럽게 말하자. 우리 중에서 미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요즘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한다. 이런 내 모습을 보면서 "엥? 그거 해서 뭐 할 건데?", "그게 돈이 되는 거야?", "직장 생활이나 열심히 해", "차라리 재테크나 해서 돈이나 더 벌어"라는 사람들이 있다. 그 말에 흔들리는 건 사실이다. 흔들릴 때마다 책을 쓰고, 강연하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 순간 가슴은 콩닥 거리고 입에는 미소가 지어진다. 지금도 상상하는데 너무 설렌다. 나는 이제 어떻게 행동할지 알고 있다. 몇 년 후 그 사람들은 뭐라고 할까?
우리들의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