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핑
처음 시작할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감회가 새롭다. 100일이 이렇게 길게 느껴질 줄 알았지만, 막상 지나고 보니... 눈물 나게 길었다. 마치 남한과 북한의 사이처럼 가깝지만 실제로 가기는 어려운 곳이라 생각되었다. 성공 후 주변 반응은 반반으로 나뉘었다. 함께 술을 먹던 친구들은 "독한 놈"이라 나를 불렀고, 평소 술을 안 먹던 친구들은 "그래서 뭐"라고 나를 불렀다. 주변 반응도 중요하지만 역시 내 반응이 최고다. 왜냐하면 내 삶이니까! 그럼 100일간 나에게 일어난 짜릿한 변화들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다.
거울을 쳐다봤다. 피부 변화가 보인다. 하얘졌다. 팽팽해졌다. 맑은 눈이다. 빛난다. 광인이다. 벤자민의 버튼을 눌렀나 20대로 다시 돌아왔다. 단점이 있다면 관리를 더 하게 된다. 돈이 더 든다. 피부가 투명해지는 그날까지 먹지 마세오, 피부를 위해 (술) 외면하세오.
1) 체력
달리기는 급똥 마려울 때처럼 빨라졌다. 웨이트는 평균 20kg을 더 들어 올린다. 여자친구도 자꾸 들어 올린다. 힙업은 난 원래 애플힙이었다. 활력은 영하-10에 떡볶이 집에서 어묵국물을 먹을 때처럼 뜨겁다. 가장 좋은 건 복근님이 나에게도 찾아오셨다는 거다. 와따! 매일이 거울 앞에서 설렌다.
2) 수면
나는 원래 밤 귀가 참 밝았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도 일어나는 정도였다. 금주 이후에는 누가 업어가도 모른다. 너무 새근새근 잘 자고 잘 일어난다. 자고 일어나서 "아 피곤해"가 하루 첫마디였다면 요즘은 "아 잘 잤다! 오늘도 살았다!"
3) 머리카락
원래 머리를 감았을 때, 수건으로 물기 닦을 때, 드라이기로 말릴 때 내 영혼이 한 올씩 아니 몇 십올씩은 날아갔다. (남자는 머리가 생명이기 때문) 하지만 금주 후 영혼 날아가는 속도가 반에 반에 반으로 줄었다. 머리카락은 80~90%가 *케라틴(keratin)이라는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다. 충분한 단백질은 머리카락 건강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잦은 음주는 단백질 합성을 방해하고 분해를 촉진한다. 따라서 머리카락 영혼을 붙잡기 위해 금주가 가장 좋은 약이다.
4) 키 : 내 키는 174다. 와아. 금주를 하고 나서 키가 174가 되었다!
5) 몸무게
술을 먹으면 배가 불러도 자꾸 먹게 되는 경우가 있다. 계속 먹게 되는 이유는 알코올이 뇌의 식욕조절 부위에 침입해서 헤롱거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앞에 있는 것들이 자꾸 입으로 들어간다. 아니 눈앞에 없는 것도 열심히 찾아 입으로 넣는다. 금주를 하니 하루에 2끼만 먹는다. 돈도 아끼고, 시간도 아끼고, 몸무게도 아꼈다. 단점은 모임에서 술도 음식도 많이 먹을 수 없다. 더치페이시 가성비가 떨어질 수 있다.
6) 마음의 변화
감정 기복이 없다. 머리가 맑다. 두뇌가 공중제비를 돈다.(좋은 거다) 멘탈이 단단하다.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욕할 수 있다. 집중력이 올라간다. 책이 잘 읽힌다. 글이 잘 써진다. 단점은 심심하다. 진짜 너무 심심하다. 덕분에 책을 더 많이 읽게 되었으니 이거 완전럭키비키자냐~!
7) 사회적 관계 변화
금주 후 인간관계가 줄어들었다. 모임에서 술을 마실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술을 안 먹어도 찐친들은 계속 만났다. 처음에는 "이시키 네가 금주를? 구라 치네. 음식 나오면 마실 거면서" 놀렸다가도 몇 달이 지나니 "독한 놈"으로 응원해 줬다. 결국 100일이 지난 후진심으로 축하해 줬다. 친구들은 가장 좋은 신뢰를 뜻하는 "개독한 놈"이라고 나를 불렀다.
아 새로운 습관도 생겼다. 치킨집에 가서 '사장님 혹시 무알콜 맥주 있어요?' 모임에 가서 '사장님 혹시 무알콜 맥주 있어요?' 고깃집에 가서 '사장님 혹시 무알콜 맥주 있어요?' 말하기다. 그렇다. 금주 100일 성공의 가장 큰 비결은 '무알콜 맥주'다.
라는 말을 주변에서 많이 들었다. 내 속에서도 "언제까지 하려고 이 자식아"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내가 금주를 하게 된 이유는 (술 없는 삶, 친절한 금주씨) 이전에 연재하던 글에서도 썼지만, '자제력' 때문이다. 평소 가장 존경하는 법륜스님이 말했다. "100일을 버티면 카르마(습관)가 바뀐다" 술 마실 때 내 습관은 멈출 수 없는 8톤 트럭이었다. 100일 동안 작은 실천들이 쌓이면서 그 습관이 바뀌었다. 이제는 충분히 조절할 수 있다. 만약에 또 자제를 못하게 된다면 그때는 200일 300일 아니 몇 년을 다시 금주핑으로 돌아올 거다.
마지막으로 100일 금주를 별로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생각보다 얻는 것들이 많았다. 건강도, 사랑도, 신뢰도, 성취감도, 나는 이제 모든 것들을 할 수 있다는 스스로의 믿음도.
당신도 언제나 원하는 것들을 성공할 수 있다. 당신이 원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