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집, 가벼운 마음
우리, 주말에 대청소할까?
봄이 오면 이상하게 집을 싹 정리하고 싶어진다. 겨울 동안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새 계절을 맞이하는 기분이랄까? 그리고 매번 그렇듯이, 이번에도 평범한 청소가 아닐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이번 청소의 시작은 이불 빨래였다. 작년 겨울, 장모님이(이제 곧 되실) 사주신 이불을 덮고 따뜻하게 보냈다. 하지만 날이 풀리면서 자다가 땀을 흘리는 일이 많아졌다. 이불에서도 살짝 땀 냄새가 났다. 빨래를 결심했다. 여자친구가 직장에서 돌아오기 전에 먼저 해두고 싶었다. 칭찬을 받을 생각에 신이 났다. 동영상을 찍어 보내자 곧바로 답장이 왔다.
"구스는 빼고 돌린 거야?"
응? 따로 빼야 해? 전혀 몰랐다. 결국 전화를 받고 엄청 혼났다. 구스이불은 세탁망을 써야 하고, 울세제와 울섬세 모드로 돌려야 한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이미 세탁이 끝난 구스이불은 한눈에 봐도 원래 모습이 아니었다. 한껏 쪼그라든 거위털들이 거실 한쪽에서 천천히 말라가고 있었다. 살려야 한다. 아니, 내가 살아남으려면 무조건 살려내야 한다. 그날부터 나는 이불에 고오급 간호를 했다. 매일 1시간씩 드라이기로 거위털들을 말렸다. 그렇게 5일이 지나자 거위들이 살아났다. 이불을 살려내고 나니, 어쩐지 더 큰 일을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겨울의 흔적을 싹 없애고 싶어졌다. 그래서 우리는 주말에 본격적인 대청소를 하기로 했다.
주말이 되었다. 점심으로는 집 앞에서 '짜장면 5천 원' 오픈 행사를 하는 가게에 갔다. "싼 게 비지떡 아닐까?"라며 반신반의했지만, 막상 가보니 정말 맛있었다. 역시 이사든 대청소날이든 짜장면이 답이다. 든든하게 먹고 나니 힘이 났다. 커피 한 잔까지 마시고 나니 본격적으로 시작할 준비가 됐다. 우리는 청소할 구역을 나누었다. 베란다 창고부터 시작해 주방과 욕실, 작은방과 옷방까지 정리해야 할 곳이 많았다.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노동요가 흘러나왔다. 지드래곤의 ‘POWER’가 나오자 전투력이 급상승했다. 양손에는 장갑, 얼굴에는 마스크까지 착용 완료. 이제 전쟁이 시작되었다. 각자 맡을 구역을 정하고, 청소를 시작했다. 하지만 1시간이 지나도 내 담당 구역인 베란다는 끝나지 않았다. 창고와 베란다는 겨울의 묵은 때가 가장 많이 쌓이는 공간이었다. 여태 우리 집이 깔끔해 보였던 건 모두 여기에 몰아넣었기 때문이었다.
힘이 들어 잠시 물을 마시러 갔더니, 여자친구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청소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뜻밖의 보물들을 발견했다.
"이 편지 좀 봐봐! 너무 예쁘지 않아?"
"와, 우리가 이런 거 산 적이 있었나?"
"오, 5만 원 발견! 개이득!"
"오빠! 이거 왜 여깄어! 이거 다 썼다고 하지 않았어? 왜 또 산 거야?”
추억이 깃든 물건들을 발견하면서, 웃기도 하고 감동도 받았다. 음… 혼나기도 했다. 그리고 자리만 차지하는 물건들도 많았다. 이걸 다 쌓아두고 살아야 하나? 고민 끝에 정리의 기준을 정했다.
‘이 물건을 봤을 때 설렌다면 남기고, 아니라면 버린다.’
기준을 정하고 나니 신기하게도 버려야 할 것들이 더 뚜렷이 보였다. 게다가 당근마켓에 올릴 물건들도 많아졌다. 집이 점점 넓어지고, 돈도 벌 수 있고, 마음도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대청소의 중간이 지났다. 나는 큰방을 맡았고, 여자친구는 주방과 욕실을 담당했다. 큰방은 침대만 있는 공간이라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침대를 살짝 밀자 곰팡이가 보였다. 애써 모른 척하고 싶었다. 그러다 또 혼날까 봐 제대로 닦아냈다. 여자친구도 주방과 욕실을 반짝반짝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4시간이 지나고, 저녁 시간이 되었다.
옷방과 신발장은 아직 남았지만, 더 이상 체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오늘은 여기까지. 고생한 우리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다. 저녁으로는 맛있는 홍게를 주문했다. 너무 배가 고파서 요청란에 "다리 떨어진 것도 좋으니 많이 주세요! 리뷰 꼭 남길게요!"라고 적었는데, 사장님이 정말 넉넉하게 보내주셨다. 대충 세어보니 다리만 15개쯤은 더 있었다. 홍게의 달달한 맛과 게딱지 비빔밥의 행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마지막까지 깨끗하게 설거지를 마친 후, 새롭게 정리된 집을 바라보았다.
깨끗한 공간이 주는 만족감은 단순한 정리가 아니다. 니체는 ‘어지러운 집을 정리하는 것은, 어지러운 마음을 정리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집을 정리하는 동안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어느새 4시간이 지나 있었다. 하나둘씩 물건이 제자리를 찾을수록, 머릿속도 함께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생각을 비우고 몰입하는 순간. 명상을 할 때도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집이 깨끗해지면서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는 걸 보니, 정말 맞는 말이었다.
깨끗한 집, 가벼운 마음. 그래서 나는 매년 봄마다 청소를 한다. 그리고 내년에도, 또 그다음 해에도. 아마도, 우리가 반복해서 청소를 하는 이유는 단순히 먼지를 없애기 위해서가 아닐 것이다. 묵은 것들을 정리해야 새로운 것들이 들어올 수 있으니까. 그리고 어쩌면, 그것은 집뿐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여러분도 올봄, 새로운 시작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