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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포국수 Aug 31. 2024

내만사 - 황영조

스포츠인 10

황영조 (1970 ~ )

몬주익의 영웅이었던 그를 선수로 볼 수 없게 된 지도 오래되었다. 손기정 옹에 이어 금맥을 이어온 한국 마라톤이 침체기에 빠졌다. 다시 시작하면 된다. 우리에게는 자랑스러운 마라톤의 전설들이 있었다.




황영조는 한국인 최초 2시간 10분벽 돌파, 올림픽, 아시안게임, 유니버시아드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모두 차지한 인물이다. 그러나, 27살 너무 이른 나이에 은퇴했다.


그는 강원도 삼척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시절 사이클을 했으나, 고등학교 때부터 중장거리 선수로 뛰다가 마라톤으로 전향했다. 그는 1991년 동아 마라톤에 첫 데뷔해 3위에 입상했다. 같은 해, 영국에서 하계 유니버시아드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1991년 마라톤 선수로 데뷔하자마자 주목을 받았다.1992년 일본 마라톤 대회에서 2시간 10분 벽을 한국인 최초로 깨고, 2시간 8분 47초의 기록으로 2위를 했다. 같은 해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마라톤 금메달을 따내고, 월계관의 주인공이 되었다.


손기정 옹은 일장기를 달고 우승했지만, 마라톤 한국인 최초 그리고 육상종목을 통틀어 올림픽 첫 금메달이었다. 당시 경기장에는 송기정 옹이 그의 우승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자신이 56년 전 베를린 올림픽 때 우승했던 8월 9일과 날짜가 겹쳐져, 더욱 각별했던 금메달로 기록되었다.


그는 몬주익의 영웅으로 칭해지며, 무더위와 최악의 마라톤 코스를 극복한 마라 토너로 기록되었다. 오랫동안 지상파 방송의 애국가에, 당시 우승장면이 삽입되었다. 2년 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 컵에서도 우승하며, 그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국내예선에서 탈락(4위)하고 은퇴했다. 은퇴 배경에는, 족저근막염이라는 심각한 병이 있었다.


마라 토너로서 6년간 모든 것을 이뤘지만, 아쉬운 조기 은퇴였다. 동갑내기 고향 친구 이봉주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3초 차이로 아쉽게 은메달을 땄다. 이봉주는 황영조에 비해 선수생활을 길게 하면서, 그와 비교되기도 했다.


1990년대 그는 한국 마라톤을 세계에 우뚝 세운 마라 토너였다. 2024년 파리 올림픽에 나라마다 남녀 총 6명 출전이 가능한데, 우리나라는 기준기록을 통과한 선수들이 없어 한 명도 출전하지 못했다. 우리나라가 지난 30년 동안 마라톤의 불모지로 변했는데, 황영조처럼 훌륭한 태극마크의 마라 토너를 다시 한번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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