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두 딸들로 말하자면, 애착인형을 떼놓고 설명할 수 없다. 큰아이는 마트에서 우연히 발견한 토끼 인형, 쫑아. 작은 아이는 선물 받은 옷에 대롱대롱 매달린 고슴도치 인형, 고슴이. 각자 서로를 닮은 인형들과 헤어나올 수 없는 애착을 형성했다. 여행을 가서도, 손에 인형이 없으면 불안해하고, 잠도 잘 못 자더니만 등원할 때도 가지고 가겠다고 울고불고 떼를 써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 정도면 '애착인형' 아니고 '집착인형'이라 불릴만 했다고 본다.
큰 아이는 이제 좀 컸다고 해어져서 솜털이 삐죽 나와있는 토끼 "쫑아"를 불면 날아갈 새라 애지중지 고이 모셔두고 다니지만, 작은 아이는 아직까지도 "고슴이"를 손에 꼭 쥐고 어딜 가든 함께한다.
추우면 추울까 봐 옷을 만들어 주고, 더우면 더울까 봐 시원한 창가에 쉬게하며 애정을 쏟는다. 인형을 가지고 노는 것도 눈꼴셔서 못 보겠다. "예쁘다, 귀엽다, 사랑스럽다" 온갖 좋은 형용사를 다 갖다 붙이며 인형에게 칭찬세례를 퍼붓는다. 엄마를 좀 그렇게 봐줄래? 유치하게도 난 인형에도 질투심이 생긴다.
어딜가나 함께한 애착인형들은 이제 낡고 닳아버렸다.
책속의 곰, 그리고 우리 곰들
오늘 아이들과 읽은 책은 [Bear is a Bear]
애착 인형을 하나씩 둔 아이들에게 딱 들어맞는 책을 발견하고 환호했다. 우리 아이들 인형이 곰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읽으면서 각자의 인형을 떠올릴 것을 기대하며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책을 빌렸다.
잔뜩 기대에 부푼 곰 한 마리가 아이와 첫 만남을 가진다. 새로운 친구가 된 곰은 아이가 커가는 동안, 그 아이가 무엇을 하든 든든하고 변함없는 조력자이자 포근한 품이 되어준다. 그 긴 시간 동안 변함없는 사랑으로 아이의 곁을 지킨다. 아이는 자라고, 슬프게도 곰은 뒤로 밀려난다. 결국, 상자에 갇혀 먼지만 쌓여가던 어느 날, 다시 세상에 나온 곰은 이제는 엄마가 된 '아이'의 딸과 새로운 친구가 된다.
이 곰, 너희들한테는 누군거 같아?
책의 맨 뒷장을 덮고 아이들에게 물었다.
"난 하은이!"
"난 채희!"
엥? 나의 예상을 항상 빗나가는 아이들.
"어...? 고슴이랑 쫑아 아니었어?"
"고슴이도 내 친한 친구야. 근데 하은이가 늘 나랑 같이 놀고, 같이 웃잖아. 그러니까 하은이야!"
나는 또 한 번 깨달았다. 어른의 고정관념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단정 짓고 있었다는 것을. 곰은 반드시 인형일 필요가 없다. 아이가 가장 사랑하고 의지하는 누구나, 무엇이나 곰이 될 수 있다.지금 우리 딸들에게 그림책 속 '곰'같은 존재는 함께 울고, 웃고,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친구'였나 보다.커가면서 '곰'은 또 다른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 아마 남자친구나 남편이 될 수도 있겠지? 그 곁다리에, 이 엄마도 좀 끼워줄 수 있겠니?
곰과 함께 하는 성장
'곰'처럼 언젠가는 아이들에게도 사랑하는 것과의 이별이 찾아올 것이다. 사랑하는 인형을 잃어버릴 수도 있고(잃어버린 고슴이를 가까스로 찾은 사건이 있었다), 사랑하는 친구와는 같은 학교, 같은 반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별한다고 해서 지금까지 나누었던 사랑과 추억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시금 '아이'가 상자 속 '곰'을 찾아 자신이 받은 포근했던 어린 시절의 감정을 딸에게 물려주는 것처럼 그 사랑은 또 다른 방식으로 이어진다.
나에게도 나만의 애착인형이 있다. 바로, 나의 사랑하는 두 딸들이다.떨어져 있으면 보고 싶고,안고 싶고, 눈을 맞추며 웃고 싶다.아이들은 내가 늘 보살펴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던 날들도 있었지만 되돌아보니, '곰'에게서 '아이'가 위안을 얻고 커가듯, 딸들에게서 받는 위로와 사랑으로 더 많이 성장한 내가 있었다. 두 딸들을 위해 멋진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려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고, 두 딸들에게 더 좋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찬 내가 보였다.
곰처럼 기다리는 사랑
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다짐한다.
“애착은 하되, 집착은 하지 말아야지.”
집착은 사랑하는 존재를 묶어두려는 욕심일 뿐이다. 아이를 응원하는 따뜻한 '곰'의 마음으로 딸들을 바라봐야한다.
"Bear is a bear full of love."
엄마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가득 찬 사랑으로 너희를 바라보고 있다는 걸 잊지 않으면 좋겠다.
슬프거나 힘들 때, 한결같이 따뜻하고 포근한 품을 내어주는 너희들의 애착인형이 되어줄게.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물었다.
"만약에 고슴이랑 쫑아가 넓은 세상이 보고 싶어서, 편지 한 장 달랑 남기고 떠나버리면 어떨 거 같아?"
앗, 벌써 두 눈에 눈물이 글썽인다.
아직은 아무래도 좀 더 아이들 곁에 있어 주어야 할 것 같다.
고슴아, 쫑아야,
오래오래 아이들의 다정한 친구가 되어 슬플 때 위로가 되고, 기쁠 때 함께 기뻐하는, 제일 가까이서 우리 아이들이 커가는 것을 함께 바라봐주는 '곰'이 되어주렴. 너희가 있어 아이들이 더 많은 사랑을 배울 수 있으니 말이야. 언젠가 너희가 곁에 항상 함께하지 않는다 해도 아이들은 그 사랑을 기억하고, 세상에 더 많이 나누는 어른으로 자라날 거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