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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쪽같은 내 학생들

청소 좀 하고 갈래?

by 솔아

"다 들어와!!!"


천둥같이 소리를 질렀다. 가을을 맞이하는 새파란 하늘보다 더 서슬 퍼런 분노를 담은 사자후. 영문을 모를 표정으로 다른 반, 다른 학년 아이들까지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글을 읽는 누군가 내 모습을 봤다면 정말 미친X을 떠올렸을지도.

내려다본 창문 밖에는 아이들이 소복이 모여 공놀이 중이다. 내 기분과는 달리 운동장 풍경은 가을옷을 갈아입어 알록달록,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다. 삼삼오오, 낙엽만 굴러가도 까르르 웃는 아이들까지. 평화롭기 그지없다.


눈을 감고 한숨을 크게 한 번 쉬며 마음을 다스려본다. 진정하자, 진정.

'나는 온도계가 아니다. 온도 조절 장치다.'

열받는다고 있는 대로 수은주가 올라가면 온도계는 폭발할 뿐. 활활 타라 재만 남을 순 없지. 감았던 눈을 뜨고, 조금은 차분한 마음으로 다시 운동장을 내려다보았다. 런데, 느릿느릿 걸어오는 폼이 가관이다.

온도 조절, 오늘은 못할 거 같다.




우리 반은 점심시간에 청소를 한다. 1학년이기 때문에 제일 늦게 급식실로 가서 밥을 먹기도 하고, 7교시까지 늘어지는 긴긴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도 같이 축 늘어져 마치 녹은 치즈 같 안쓰럽기도 해서. 공부에 지쳐있는 이 불쌍한 어린양들을 얼른 집에 보내야 나도 급한 업무들을 처리하고 칼퇴를 할 수 있도 하다.


갓 초등학교에서 올라와 초딩티 벗지 못한 새내기 중딩들일 때는 가 특별히 뭘 어쩌지 않아도 청소지도 정도야 뭐, 식은 죽 먹기였다. "3반 애들은 손이 야무진가 봐. 교실이 깨끗하네!"라는 교과 선생님들 칭찬도 들었다.


여름방학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호르몬 탓인가. 키가 쑥 큰 만큼 잔머리도 굵어졌다. 나름 저들을 배려한다고 청소 구역을 세세하게 나눠서 많지 않은 청소 양일텐데도 슬쩍슬쩍 요령을 피우기 시작했다. 점심시간까지도 눈코뜰 새 없이 바쁜 담임이 청소 검사를 하러 교실에 들르는 일이 뜨문뜨문해진 걸 간파한 것이다. 여우 같은 것들 보소!


결국 일이 터졌다. 점심시간 학습지도 학생을 잠시 기다리게 하고, 교실에 들렀다.

세상에. 창문은 꼭꼭 닫힌 채, 빗자루 쥔 사람 1명, 대걸레 1명. 달랑 2명만이 교실을 쓸고, 닦고 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영민아, 애들 다 어디 갔니?"

당황한 손가락이 창문을 향한다.

운동장? 지금 운동장을 가리킨 건가? 못다 한 과제를 하는 것도, 화장실에 가느라 늦는 것도 아니고, 운동장이라고? 배신감이 두 배로 치솟았다. 내 너희를 믿었거늘. 거리가 꽤 있는데도, 나의 분노에 찬 음성이 운동장으로 울려 퍼졌다.


분명 몇 분 걸리지 않았겠지만, 나의 체감상 억겁이 걸린 듯 거북이걸음으로 교실로 올라온 아이들에게 잔소리 폭격기를 가동했다. 이 교실이 누가 쓰는 교실인지, 이 먼지를 누가 다 들이마시고 있는지. 내 입에서 불도 함께 뿜어져 나왔으리라. 아이들 귀에 피는 안 났나 몰라. 오후 수업 이후까지 가라앉지 않은 나의 분노를 고스란히 느낀 아이들은 종례시간에도 전에 없이 조용히 전달사항을 었더랬다.


내가 소리를 지르는 일은 정말 드물다. 단, 잔소리가 좀 많은 건 인정. 이렇게 한 번씩 나의 분노를 폭발시키는 사건이 발생하면 무서운 호랑이가 되어버린다.


'어휴, 소리는 왜 질러대서는... 그냥 잘 타이를걸.'

아이들을 혼내고 밤에 홀로 반성하는 엄마들처럼, 학생들을 혼내고 나면 내 자식을 혼낸 듯이 마음 한편이 찝찝하고, 후회로 가득 찬다. 당시엔 화가 나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면, 더없이 자괴감이 밀려 때도 있다.

후회 섞인 힘없는 한숨을 내뱉고 텅 빈 교실을 둘러보았다. 제멋대로 널린 걸레며, 1년이 다 가도록 종이와 플라스틱을 뒤섞어 버린 분리수거함이 대환장 파티를 이루고 있다. 들 말로는 청소했다는 교실이 이렇다. 그저 조용히 어지러운 교실을 정리했다. 다시 스멀스멀 용암처럼 기어올라오려는 화를 지그시 눌야 했지만.

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

그래, 오늘의 잔소리를 내일로 미루자. 내일은 좀 다르겠지.

청소 좀 못하고, 안 하면 어때. 우리 집은 깨끗한가 뭐. "노는 게 제일 좋아!"를 외칠 나이인걸. 그 마음만은 이해해야지.

분명, 내일 또 아이들과 지지고 볶으며 화도 냈다가, 웃었다가 는 롤러코스터 같은 하루가 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그래도 조금은 더 다정한 선생님이 되어주겠다, 마음속으로 되뇌며 아이들 눈에는 미처 띄지 않은 먼지들을 쓸어 담아 쓰레기통에 부었다. 먼지와 함께 나의 몹쓸 분노도.


금쪽같은 내 학생들, 아니 내 새끼들.

래도 우리 금쪽이들아,


청소 좀 하고 갈래?


-2024년 11월 3일, 글을 옮겨왔습니다. 삭제하면 날아가게 될 소중한 댓글들이 아쉬워 이전 글을 그대로 남겨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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