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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NHS보다 빨랐다.

이미 다 붙었는데요?

by 수지 Mar 01. 2025

2020년 2월.

시험기간에 상담센터를 찾았다가 덜컥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되고, GP 진료를 기다리고 있던 때.

사실 내 앞에 놓인 예약은 하나 더 있었다.

욱신거리는 발목을 진료받기 위한 예약이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이번엔 무식함이 화를 불렀다.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친구들의 꼬임에 넘어가 리치몬드 파크에서 열리는 10Km 미니 마라톤에 등록했다.

문제는, 우리 중 그 누구도 10Km를 뛰어본 적 없다는 것.

어떻게, 얼마나 연습해야 하는지 감이 안 잡혔다.

우리는 나름대로 계획을 세웠다.

평일엔 각자 연습하고, 대회 전 두 번은 주말에 리젠트 파크에서 만나 10Km를 함께 뛰어보기로 했다.


다만, 그 계획은 단 한 번도 실행되지 못했다.

첫 번째 주말엔 지하철이 파업하는 바람에 약속이 취소되었다.

두 번째 주말엔 모이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하지만, 그날 아침까지 쨍쨍하던 하늘이 우리가 만나자마자 비바람으로 변했다. 도저히 달릴 수가 없었다.

영국 날씨를 믿은 내 잘못이었다.


대회 2주 전,

그때까지 나는 10K는 커녕, 5K도 쉬지 않고 뛰어 본 적 없는 상태였다.

슬슬 걱정되었다.

그날부터 매일 저녁, 헬스장에서 트레드밀을 달리기 시작했다.

첫날, 걷다 뛰다 반복하며 겨우 6Km를 뛰었는데도 죽을 것 같았다.

그래도 매일 억지로 뛰다 보니 체력이 늘었고, 점점 재미도 붙었다.


대회를 일주일 앞두고는 매일 쉬지 않고 10Km를 달렸다.

그땐 아무것도 몰라서, 10Km 대회를 나가려면 매일 10Km 씩 연습해야 하는 줄 알았다.


대회 3일 전,

달리기를 마치고 헬스장을 나오는데 , 왼쪽 발목이 욱신거렸다.

"발목을 삐끗한 적도 없는데.. 괜찮겠지?"

요 며칠 너무 열심히 뛰어서 생긴 근육통이겠거니 했다. 평소보다 길게 스트레칭하고 그대로 잠들었다.


대회 당일 아침,

침대에서 나와 첫 발을 내딛는 순간, 깨달았다.

"X 됐다."

왼발을 땅에 디딜 때마다 날카로운 통증이 훅 치고 올라왔다.

이때라도 포기하고 병원을 예약해야 했다.

그런데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눈 딱 감고, 10Km만 뛰자."


친구들과 택시를 타고 리치몬드 파크에 도착했다.

막상 번호표를 달고 몸을 풀다 보니, 통증이 덜한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긴장과 추운 날씨 때문에 감각이 마비된 거였다.


출발선 앞에 서니 이유 없이 느낌이 좋았다.

"5Km 두 바퀴면 끝난다."

그 너덜너덜한 발목을 가지고도 10Km를 완주할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솟아났다.

이 느낌은 정확히 700m 지점에서 산산조각 났다.


"UK's flattest 10K"

리치몬드 미니 마라톤의 홍보 문구였다.

영국에서 가장 평탄한 10Km 코스라고 자랑했었다.

편평할지는 모르겠으나, 진흙탕이었다.

전날까지 내린 비로 군데군데 물웅덩이가 생겼고,

수많은 참가자들이 지나가며 만든 울퉁불퉁한 진흙길이 내 발목을 공격했다.


점점 통증이 심해졌다.

이미 무리에서 한참 뒤처져 있었다.

너무 아파서 포기할까 고민하며 거리를 확인했다.

"2.5 Km."

앞으로 가나, 돌아가나 어쨌든 2.5Km는 더 뛰어야 했다.

짙은 회색이던 영국 하늘이, 그날따라 노랗게 보이는 것 같았다.


거의 울먹이며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절뚝이며 대회 부스로 가서 "10Km는 못 뛰겠어요"라고 말하자,

주최 측에서 "5Km 결승선은 통과했으니까, 5Km 참가자로 바꿔줄게요"라고 했다.

그렇게 나는 5Km 완주 메달을 받았다.


친구들을 기다리는데, 영국인 아저씨가 다가와 물었다.

"너는 기록이 어떻게 돼?"

처음엔 비꼬는 줄 알았다.

알고 보니, 내가 본인처럼 40분 만에 10Km를 완주한 줄 알고 반가워하는 거였다.


친구들이 차례로 10Km를 완주했다.

이때라도 택시를 타고 집에 갔다면 나았을까.

하지만 첫 마라톤 완주를 기념하겠다는 핑계로, 우리는 외식을 하고 런던 시내를 한참 걸어 다녔다.

집으로 돌아갈 때쯤, 나는 절뚝이는 것조차 불가능해졌다. 왼발을 질질 끌면서 집에 도착했다.


다음날 아침,

퉁퉁 부은 발목을 보고 그제야 GP 예약을 잡았다.

가장 빠른 날짜가 한 달 뒤.

이런 발목으로 한 달을 버틸 수 있을까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쯤 되면 영국 의료 시스템(NHS)을 탓할 수도 없었다.

아프기 시작했을 때 진작에 예약했더라면,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진료 직전, 코로나가 터졌다.

영국의 모든 대면 서비스가 중단되었다.

정신과 진료, 발목 진료. 모두 취소되었다.


한국에 돌아왔다고 해서 바로 해결된 것도 아니었다.

입국 후, 의무 자가격리 2주.

그렇게, 다친 지 두 달 만에 정형외과를 방문했다.

의사가 엑스레이를 보며 말했다.

"발목이 부러졌었는데요. 어.... 이미 다 붙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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