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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싸 Oct 10. 2024

불행에도 절대적 기준이 있다면

난 달라졌을까?


꽤 오랫동안 우울감과 무기력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얼마나 힘든 일들이 있었길래....?'







어린 시절엔 나만의 세계가 전부였으므로 당시에는 내가 제일 불행하고 불쌍한 존재인 줄 알았다. 나는 나를 몹시나 불쌍히 여겼고, 내 삶을 불행하다 느끼며 우울했다.

세월이 흐르고 더 넓은 세상에 나와 다양한 사연들을 접하고 보니 나 정도로 비련의 주인공인 마냥 굴었다는 것이 좀 한심하기도 하고 쪽팔리기도 했다. 




만약 고통과 불행의 절대적인 기준이 있어 [불행 50점 이하 우울금지법]이 있다면 어떨까 하고 상상해 봤다. (그럼 아마 난 무기징역.) 이런 기준이 있어 내 삶이 절대적으로 덜 불행하다는 걸 알았다면 나는 달라졌을까? (글쎄... 불행을 느끼는 건 상대적이더라..)




자라온 환경 때문에 우울한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면 같은 배에서 나와 같은 환경에서 자란 언니도 나와 같아야 하겠지만 나는 언니의 입에서 "우울"이란 말을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부모의 갈등 속에서 불안에 떨던 나와는 달리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어린 시절 안 좋았던 일들만 기억하는 반면 언니는 좋았던 일들만 기억한다. 




나의 우울감과 무기력은 그냥 나라서, 내가 부정성 편향이 심해서라는 결론을 내렸다. 세상을 살면서 부정적인 경험만 기억하고 같은 상황에서도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기질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이러니 나의 우울감과 무기력엔 항상 함께 따라오는 감정이 있었다.



"자괴감"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 마음)



나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씩씩하고 밝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우울하고 무기력하다는 이유로 시간을 낭비하는 내가 참 부끄러웠다. 그럼에도 나아지지 않는 내가 너무 밉고 싫었다.







최근에 들어서야 왜 그렇게 나에게 엄격했을까, 왜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해 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다른 삶이야 어떻든 내 삶에서 내가 느낀 고통과 불행은 존재했고 그 경험들을 통해 지금의 내가 된 것인데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아 내면의 치유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자꾸 나를 혼내고 다그치고 "넌 그러면 안돼"하며 부정하는 동안 나의 어둠은 더욱 깊어졌다. 



다른 사람을 통해 나의 우울과 무기력을 위로받고 공감받고 싶어 했다. 그런데..



나부터, 내가 먼저 나를 안아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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