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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싸 Oct 14. 2024

지독한 매처

받는 만큼 주는 사람 = 주는 만큼 받아야 되는 사람

애덤 그랜트의 책 [기브 앤 테이크]에서 사람은 3 부류로 나뉜다고 말한다.



기   버 : 주는 사람
매   처 : 받는 만큼 주는 사람
테이커 : 받기만 하는 사람



나를 3 부류 중에 굳이 나누라면 매처에 가깝다. 받는 만큼 줘야 부담스럽지도 미안하지도 않다. 그래서 받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 특징이 더 추가된다. 바로 주는 만큼은 받아야 된다는 것.







이런 지독한 매처인 내가 가장 이해하기 힘든 인간 행동 중 하나는 팬덤이다. 그들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관심 표현은 내 기준에서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이상한 행동이다. 돌아오지도 않을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시간과 돈을 마구마구 쓰다니...




고등학교 시절 친구 중 한 명이 젝스키스의 열렬한 팬이었다. 당시 젝스키스가 공연하던 어린이 뮤지컬이 있었는데 서울에서 하는 그 공연을 보기 위해 수학여행비를 삥땅 쳐서 다녀왔다. 어른 뮤지컬도 아닌 어린이 뮤지컬을 그것도 두 번씩이나. (이 에피소드는 새발의 피) 현재 팬덤 문화의 시초 격이었던 그 친구의 행동 하나하나가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최근 야구를 좋아하게 된 아이들로 인해 신랑이 신이 났다. 그동안 혼자서 TV로만 보던 야구를 아들 핑계로 드디어 야구장 관람을 가게 된 것이다. (신랑과 아이들은 삼성팬이다.) 나 빼고 아이들만 데리고 가는 조건으로 몇 번 다녀오게 했는데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좋았다. 하루는 대구 팔공산 휴양림에 가족 여행을 잡아 놓고 대구 간 김에 함께 경기장에 가자고 해서 다녀왔다. (머리 쓰는 신랑)  다 함께 응원가를 부르며 경기를 관람하는 건 재미있었다. 하지만 티켓팅부터 경기 시작 전 대기, 3시간이 넘는 경기 시간, 오고 가는 시간까지 거의 하루를 한 경기에 써야 한다는 게 좀 아까웠다. 굿즈샵에 있는 (내 기준의) 예쁜 쓰레기를 사기 위해 줄 서 있던 수많은 사람들, 한 명도 빠짐없이 입고 있던 야구 유니폼(우리 아이들도 결국 샀다. 추석 때 받은 용돈 올인해서)을 보니 이해가 안 되는 건 마찬가지였다.









많은 팬들이 스타나 스포츠를 좋아하는 마음이 삶의 활기를 주었다고 말한다. 나는 여전히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없지만 인정하게 되었다. 요즘 우리 집 남자들을 보면 정말 활기차 보이기 때문이다. (삼성이 플에이오프에 감)  신랑을 보며 좋아하는 것이 같은 사람들끼리 느끼는 연결감과 동질감이 더욱 팬덤 문화를 강화시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혼자 좋아할 땐 이렇게까진 하진 않았는데 요즘 굉장히 푹 빠져있다.




나에게 여전히 팬덤은 이해하기도 공감하기도 어려운 부분이다. 받는 것도 없이 주기만 하는 건 나의 이해 영역 밖이기 때문.

이해는 안 되지만 부러운 감정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무언가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받지도 못할 사랑을 받을 걸 생각하지 않고 무한하게 줄 수 있다는 게 참 부럽다. 한 번쯤은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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