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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아민 Jun 22. 2024

마음이, 자유롭고 싶대

나는 문제가 많다. 이런 저런 정신증을 지니고 있는데 이 친구들과 웃으며 잘 지낼 때도 있고 슬프게도 나를 못살게 굴 때도 있었다. 너무나도 어릴 적부터 학대를 받으며 자랐다. 아버지의 폭력과 폭언, 어머니의 정서적 학대, 사촌언니의 따돌림, 교우관계의 불화, 스스로 지니고 있던 선천적 질병. 너무 괴로웠지만 늘 웃으며 지냈다. 이게 그 흔히들 말하는 가면인가보다. 내 첫인상을 물어보거나 롤링페이퍼를 적게 시키면 100이면 100 이렇게 말한다. 밝고 재밌다. 성실하고 뭐든지 열심히 잘 한다. 착하다.

그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성공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안도감이 찾아왔다. 그러나 동시에 마음 한 편이 너무 아팠다. 아무도 나의 진짜 모습과 상황을 받아들여 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겁이 났던 것이다.


언젠가 엄마에게 이 모든 것을 털어 놓았다. 엄마는 경제적 이유를 들며 내가 정신과 상담을 받는 것을 처음엔 거절 하셨다. 그 순간 폭발했던 것 같다. 

나는 19살이 되자마자 스스로 병원에 찾아가 각종 질환을 진단 받고 딱 봐도 엄청난 양의 약을 받았다. 먹으면 하루 종일 잘 수밖에 없는 약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가난을 운운하는 어머니를 위해 알바를 멈추지는 않았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가방과 지갑을 선물해드렸다. 푼돈이라 볼 수 있지만 당시 나에겐 큰 돈이었다. 난 엄마에게도 밝고 재밌고 성실하고 뭐든지 열심히 잘 하는 착한 딸이었다. 엄마에게 만큼은 온전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싶었다. 

그런 엄마가 내 치료를 뒤로 미뤘다. 그런 엄마가 내 존재를 부정했다. 나는 가족 앞에서도 온전히 있을 수가 없었다. 집이 싫어졌다. 가족이 미웠다. 학대들이 떠올랐다. 잊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적은 없다. 그러나 평생 따라올 거라도 생각하진 못했다.

경찰들도 포기하고 선생들도 포기했을 때 엄마만큼은 날 지켜줬어야 했다. 왜 나를 방패 삼아 아빠를 저지 시켰는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런 생각이 단발적으로 든 나는 내 몸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순간 근래 보이지 않던 공황이 찾아왔고 난 헐떡이며 나를 해하기 시작했다. 분노에 잠식당해 그날의 기억은 자세하지 않고 고통으로만 가득하다. 그렇게 숨을 쉬지 못하는 상태인 나를, 자신의 머리를 벽에 박는 딸을, 엄마는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바란 것 같다. 이해.


언젠가 만난 남자친구에게도 이 모든 것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 아이는 내 얘기를 다 듣고는 이렇게 말했다. 난 그래도 이해가 안 가. 우리 너무 안 맞네. 역시. 이번엔 슬프지 않았다. 주변 아이들이 내 얘기를 듣고 나에게 거리를 둘었을 때가 생각이 났다. 나는 더 이상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수도, 이해받을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내가 많은 것을 바란 것 같았다. 사랑과 이해


집에서의 시간은 지옥같았다. 낮에는 약 기운을 못이기다 저녁이 되면 징그러운 그림들을 그렸다. 그러다 충동을 이겨내지 못하고 약을 과다복용했다. 그로 인한 뇌전증으로 병원에 입원을 자주하자 정신병동에 입원할 것을 권유 받았다. 나는 당시 집안에서, 집 밖에서, 그 밖의 모든 일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터였고 그렇게 병동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23년 12월 말일 이었다. 내 생일은 1월 3일이다. 뭔가 씁쓸했지만 속이 후련했다.


그때 또 다른 다짐을 했다. 자취를 해야 내가 살아서 뭐라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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